대덕의 역사문화

약골로 태어나 횟배 앓은 이야기

카테고리
운명/팔자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7
조회
53
약골로 태어나 횟배 앓은 이야기
줄거리 :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으며 횟배를 앓은 적이 있다. 어려서 똥을 누다 회가 나와서 기겁을 한 적이 있으며 자식들 키울 때에는 회충약을 한번 먹였더니 그 뒤로는 횟배를 앓지 않았다.
내가 어려서 클 때 엄칭이 약하게 크고 아주 열 네 살까지 업어서 키웠어. 그렇게 맨날 앓고 그냥 돈으로 키우다시피 했어, 그냥. 그래서 크니께 나 열 일곱, 열 여덟 먹어서두 머리 끄댕이 빨간 댕기 들여서르 모두머리 땋아 가지고 그전에는 모두머리가 어딨어? 그래도 우리는 모두머리를 따가 어머니가 땋아서루 빠-알간 댕기를 그냥 치마꼬리에 대룽대룽 매달리게 그렇게 했을 적에두 만날,
"저게 살라는지 죽을란지 몰르겄다."고 그냥 그렇게 키우고 화롯가에서 밥을 요런 식기다 해서 올려놓으먼 장도 쫄아 붙는 겨. 생전 그래도 그걸 안 먹어, 그렇게 내가 밥을. 그냥 이 창시가 배가 등골에 가 붙었었어.
그래서 치마저고리를 열일곱 살 먹어서 해 입혔어, 어머니가. 설인가 추석인가 해 주더라고. 아 그걸 입구서는, 홀대치마를 입으니 뭐 무슨 수수깽이 같으더라고. 우리 외사촌이 저 청주농고를 댕겼어. 내가 나이는 더 먹었어. 한 살인가 두 살인가 더 먹었는데,
"누이, 누이, 어디 봐. 치마 저고리 입은께 더 이쁘네."
어짜고 하다가 쫓아다 떠다박질러 가지고 내가 그냥 자빠졌는데 치마가 무르팍이 뚝 떨어지더라고, 새치마가. 홀대치마를 입어서. 아이고 어떻게 분한지 죽겄어, 그냥. 새치마를 그래서 아까워서. 그래,
"누이, 내가 치마 해줄께, 해줄께."
맨날 학교 댕길 때 그랬다고.
그렇게 약하게 컸는데 우리 어머니가 나 뱃속에 들어 가지구서는 대하증이 있었디야, 병이. 시방으로 말하면 무슨 병이라고 할까? 옛날에는 대하증이라고 했어. 그래서 그냥 하 약을 독한 걸 먹고 그냥 상나무 가지를 그 독한 물을 해서 부엌에다가 이런 단지다가 놓구서는 들매날매 퍼 잡쉈디야. 그런께 떨어 지겠더라네, 대하증이.
그래서 딸을 났는데 10월 달에 났는데 요만한 토시 짝만 하더랴. 애가 그냥 약이 독해서. 그래 가지구서는 그냥 남들이 애를 보러 온다고 하면 우리 어머니가 참 횃대, 그전에는 왜 줄을 안 매고 막대기로, 횃대로 줄을 했었어요, 옛날에는 우리 클 때는. 그렇게 해서루 매달으먼 밑에다가 포대기에다 저 수건에다 폭 싸서루 포대기 덮어서 재워 놓으먼은 남들이 어린애 보러 온다고 하먼,
"아이구, 남부끄러워서 볼 것도 없다."고 우리 어머니가 참 그랬다고 그라대. 그래도 내가 제일 커, 우리 사 남매 중에서. 내가 제일 컸어요. 키도 크고 체격도 크고. 크니께.(자라서는)
그래도 클 때도 하-도 가지나 못 먹고 횟배가 그때는 심했거든. 그래서 그냥 봄이 되면 배 앓고 그냥 그거 날라먼(나으려면) 약이 어딨어? 회충산 같은 거 요런 생긴 게 있었거든. 그거 쌀을 한 되씩 주먼은 고거 두 개나 세 개나 이렇게 주먼은 그걸 먹으면 회가 ...채 빠지대. (청중:지금은 녹아서 나오지) 지금은 녹아서 나오지. 내가 쪼그매서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먹어서루 우리 언니가 샴에 물을 길러 가는데 샘물도 떨어져가 저- 아래 동네로 물 길러 가는데 거길 쫓아갔어. 아 쫓아가다 똥이 마렵대. 그래 인자,
"언니, 나 똥 마려워," 그러니께,
"저 콩밭에 가 누라."고 그라구선,
"나 얼른 갔다 퍼다가 동이에 붓고 올 테니 너는 똥을 누고 있으라."고 그라더라고. 콩밭에 가서 아 눗다 보니께 그눔의 지렁이가 빠졌던데 으, 회가 나와 가지고 그래서 왼 콩밭을 다 펄펄 뛰고 울었네, 무서워 가지고. 그래서 언니가 와서루 콩잎대 잡고 인자 떼 주더라고. 그래서 똥을 무서워서 못 눴어, 그전에는 그랬어.
그런디 나는 회채 빠지질 않고 우리 애들 큰아들, 시방 쉰 네 살 먹은 걔, 큰아들이여. 걔 클 적에 병원 갔다가 참 쌀 한 되 주구서 요만큼한 과자 같은 거 세 개 사서 그걸 하나씩을 멕였는데 정말 회채 쑥 빠지네. 요만한 게 그냥 쑥 빠졌어. 세상에 그렇게 바글거릴 수가 없어. 그라더니 생전 가도 애들이 배를 안 앓더라고.
시방은 녹아 나오니께. 내가 한번 서울 가 가지고,
"아유, 나는 배가 이렇게 아프다."고. 둘째딸이 그리야. 서울 둘째딸이. 서울로 시집갔는데.
"엄마, 회충산 시방은 그전같이 나오는 게 아니고 뱃속에서 녹아 나오니께 괜찮아. 그거 하나 사드릴까?."
"그래, 그거 사다고." 그랬더니 약국에 가서 그걸 사서루 약국서 먹었어. 그랬더니 그 뒤로는 배가 안 아픈데 가끔 똥구멍이 간질 간질햐. 이거 뭐 녹음해 가지고 가는데, 하하.
시방도 내가 가만히 생각하니 참 자식을 그래도 칠팔 남매를 낳아서 키워 보니께 어머니가 나를 낳아서 굉장히 고생하셨어. 그래서 내가 손자들한테 그라지.
"너들 엄마한테 시방 크는 것이 호강이다. 이 할미는 클 때 그렇게 고생을 하고 컸어. 약도 없구."
"할머니 시절에는 약이 없었어?"
손자가 그라잖아? 그때는 약이 없었지. 약국도 별로 없어가 한약국만 있고 병원이란 건 있덜 안 했어. 우리 클 때는. 그래서 참 내가 어머니 노래를 다 해서루 불러 봤네. 그렇잖아?
- 비래동 삼호아파트 경로당. 윤순자(여,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