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의 역사문화

인민군에게 죽은 남편

카테고리
운명/팔자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7 03:04:21
조회
122
인민군에게 죽은 남편
줄거리 : 공주에서 서산 안면도로 열 아홉 살에 시집을 갔다. 시댁이 아주 부자고 일이 많은데 일을 잘 못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거기에다가 6·25때 남편이 인민군한테 잡혀 죽었다. 살 길이 막막했지만 시부모님을 생각해서 참았고, 일이 많아서 정신 없이 살았다. 시집을 잘 받들고 아들들을 키운 덕에 지금은 호강을 하며 살게 되었다.
옛날에 시집올 때 얘기할까? (조사자:예) 나 시집왔는디 열 아홉에 시집왔어. 근디 인저 친정이 공주거든. 시집은 서산이여. 그때는 차가 완행이 있어 갖고 말여. 직행이 없어 완행 타고 말여. 이틀 간다. 서산을. 그때서 또 멀미를 얼마나- 얼마나- 해서 금강 다리 있어. 금강 다리. 거꺼정 오면서 울면서 아 차라리 죽는다고. 얼마나 심하겄어? 그때는 차가 없어 갖고 말이여. 그 하시끼라고 있어. 말하자면 대절하는 차 그거 있어.
그거 읃어 갖구서 우리 친정 할아버지, 동상 그런디 인저 장롱을 싣고 갈 수가 있어야지. 응? 멀으니까. 인저 공주에서 말여 장롱을. 장롱 이층장, 삼층장 이걸 우리 머슴 셋이 지구서 초하룻날 동지달 초하룻날 대사 지내는데 동지달 보름날 지고 가는 거여. 지구 가구서 그 짚시기(짚신) 달아매구선. 가서 공주서 떠나네? 각시는 아직 안 갔는디 인저. 그래서 각시는 닷새만에 가. 그 사람들 간 지.
닷새만에 가니께 아직도 덜 갔어. 목적지 못 갔어. 그래 가지구선 그 짚시기 달아 매 갖고 그거 떨어지면 신고하느라고. 그걸 지고 가니까 얼마나 어렵겄나? 닷새를 갔더라. 그래 가 갖고 먼저 갔지, 내가. 가서 인저 거기 사람을 내 보냈어.(마중왔다) 그 사람들(지고 온 머슴) 바빠서 보내고 인제 일꾼들 지우고.
그때서 시집을 가니께 집이 어마 어마히야. 집이 그냥. 종도 많고 대밭도 많고 그냥 말도 못하더라구. 할아버지들이, 증조 할아버지 있고 시할아버지 있고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아버지 이렇게 많-이 계셔. 아 그러구 일꾼은 막 일꾼도 상일꾼이 셋이나 되고.
그렇게 가보니께 말여 내가 얼마나 지금 (체구가) 적잖은가? 적지! 그런디 막 부잣집이니께 대사날 얼마나 사람 많겄나? 그때 동짓 달인디 참 더웠어. 그런디 가만-히 앉았으니께 옆에서 할아버지가 그랴. 아이, 부잣집 며느리 참 일 잘 해 먹겄다는 겨. 일을 헐 줄 알어야지. 뭐 해 봤어야지. 친정에서 식모만 했응께. 얼마나 아니꼽겄어? 그래도 가마-안히 앉었네. 그래갖구서 시집을 사느라고 그 시집을 살았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증조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고조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다- 돌아가시고 내가 인제 고참 됐어. 고참 돼 갖구서 인저 그래 갖구서 그때는 시집 사느라고 아무 마실도 못 가고 그냥 일만 했어. 할아버지들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도. 다-아 돌아가시고 난께 내가 인제 고참 돼네? 그때 부텀 내가 말여,
"아하, 인저 내가 내 세상이다." 그라구선 입을 안 벌렸는디 이 라디오 같은 거 틀으면 음악(노래)도 나오구 춤도 나오구 저절로 잘 나오더라구. 그래,
'내가 무슨 신들리나?' 했네. 하도 잘 나와서. 그래서 사람들이 그랬어.
"나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니께 이렇게 춤도 나오고 노래도 나오니 이게 어쩐 일이냐?"
그런께 그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도와 줬다는 겨. 다 시집 잘 살고 어른을 봉사 많-이 받들었다고.
지사가 열 두 개더라고, 그때 시집가니께. 열 아홉이니 참 적었어, 내가. 그래 갖고 그냥 울기를 그냥 하여간 끄-음찍이 울었어. 일을 못 해 가지고 혼나니께. 시어머니한테 혼나니께. 그래도 지끔 같으면 생각을 못 히야. 그래도 도망 올 생각을 못 했네. 그냥 사는 지 알았지. 그래서 이렇게 지금 백발이 그냥 팔십 넘어서 구십 돼 가네. (청중:영감님 잃은 얘기도 히야) 그거 히야 디야? 아이고 그거.
6·25때 인저 그럭하다가 그렇게 시집을 사는디 우리 신랑이 고등학교 선생이었었어. 영감님이. 근데 인저 6·25때 잽히갔거든. 그런디 자다 말고 보름날 저녁에 보름달 저녁에 자다 보니께 없어. 나갔어. 그래 갖구서는 그런께 인저 엿새날 양달이라는 데가 있어, 바닷가. 바닷가서 다 묶어 갖구 인민군들이 다 묶어 갖고 인민군들이 다 묶어가 가네. 거길 가서. 그 바다 위에다가 내뻐렸는데 우리 영감은 차-암 수영을 잘 했어. 미술도 잘 하구. 하여튼 운동 잘 했거든. 그런께 신체(시신) 다 죽었다고 해서 찾아가니께 한 십 리나 되는 데 떠내려갔어. 막 수류탄 맞어 갖고 바다 위다 드러누웠더라고.
그런디 꺼냈는디 이 머리가 피가 철철철. 그 땅이 아주 그냥 진흙이여. 그러니께 막 박어서 왔어.(신발이 빠지지 않게) 그래서 왔는디 이렇게 묶었는디 이거 그냥 바싹바싹 붙들렸어. 그리고서 여기는 여기가 피가 막 철철철 나더라고. 죽구서 그랬는디. 그때는 인민군 때미 신체도 못 …. 그냥 방에다 놓구서 있는디 하여튼 무서워서 나가질 못 해.
그랬는디 인저 장사 지내야 되는데 인저 또 인민군들이 온다는 겨 거기를. 짚어서(시집이 시골 깊은 데라) 인천 상륙하고도 얼마를 있다 왔어. 짚어서. 그걸 몰랐어. 그래서 그 사람들이 그냥 다- 잡아 갖구서 막 그냥 아이 그래서 인저 우리들은 어떡한다나 그러구서 있는디 양달이라는 데가 있어, 바다에서.
그때는 차가 있나? 구루마로 소 구루마로 (남편 시신을) 실어서 왔지. 그 얘길 다 어떻게 한다나? 그러구서 있는데 막 여기서 피가 팍 팍 떨어지는 거 있지? 총 맞었으니께 그래 보니께 그것은 뒷전 문제네? 인저 염 할라고 보니까 다 탔어. 수류탄 맞어 갖고. 어떻게 어떻게 그 얘길 다 한다나?
그렇게 해서 그렇게 해서 인제 죽었는디 그때 아들만 다섯이니께 요만 고만씩, 다. 근데 걔들 다 죽어도 신랑이 살았으면 좋겠어, 그때 내. 내 그때 그러구서 펄펄펄 뛰었네? 내가 막 이만큼 뛰더랴. 펄펄 뛰더리야. 내가 어떻게 사냐고 말여. 동네 사람들이 그랴.
그래 갖고 그렇게 살다가 그런디 내가 가마-안히 생각하니께 나는 남이여.(남편한테) 응. 나는 남이고 새끼들하고 살 생각만 걱정이지 그 부모가 얼마나 아프겄어? 쓰리고 아프겄나? 그래서 내가 우리 어머니 생각해서라도 내가 쪼끔 참어야겄다. 그러구 내가 어머니한테 잘 했지. 그러구 어머니 공궤 잘 하구. 나는 어떡하나? 그래 갖고 신랑 생각 하나- 안 해 봤어. 그럭하고 뭐 일하느라고. 밭매지 그냥 일꾼들 ...하지 무슨 정신이 있겄어, 세상에!
그래 갖고 노다-지 일만 하고 살다가 여적지 일만 하느라고. 그래도 지끔은 참 호강하고 살지. 내가 그때 잘못했으면 내가 다른 데 갔든지 나갔으면 아들 덕 봤겄나? 참 아들 며느리 덕을 말도 못하게 봤지. 지끔은 세상 부럽지 않게 살어, 내가. 과거 지난 걸 어떻게 다 말로 히야. 세상에 말도 못 히야.
- 오정동 신동아아파트 경로당. 미상(여, 8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