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의 역사문화

석봉·용호동 유적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7
조회
39
석봉동·용호동 유적
1. 정수장 건설지역
 석봉동 정수장부지 내 남사면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은 돌덧널무덤 3기, 움무덤 9기, 집자리 1기, 그리고 집자리의 온돌유구 1기 등 총 14기가 조사되었다.

(1) 돌덧널무덤
석봉동 정수장 부지 내 남사면 지역에서 돌덧널무덤은 총 3기가 조사되었다. 이중 1호 돌덧널무덤만 상태가 양호하고 2호, 3호는 모두 파괴되어 석렬이 1단씩만 남아 있다.

1) 1호 돌덧널무덤
구릉의 등줄기 서쪽 경사면에 위치한 1호 돌덧널무덤은 장축방향을 남북으로 두었다. 경사면에 침식되어 퇴적된 부식토 층을 장방형으로 파고 그 안에 할석으로 무덤시설을 만들었는데, 남쪽 단벽은 파괴되었으나 나머지 3벽은 5∼6단의 할석이 남아 있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유물은 바닥과 내부 토에서 관못과 청자편이 약간 출토되었을 뿐 다른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돌덧널무덤의 길이는 133㎝, 너비 278㎝, 깊이 77㎝ 규모이다.

2) 2호 돌덧널무덤
구릉의 등줄기 맨 위에 위치한 2호 돌덧널무덤은 1호 움무덤과 일부 중복되어 있다. 장축방향을 남북으로 두고 조성되었는데 모두 파괴되어 북벽 일부와 양쪽 장벽의 일부만 남아 있고 굴광선도 확인되지 않는다. 출토된 유물은 없으며 돌덧널무덤의 규모는 잔존남북 길이 80㎝, 잔존너비 85㎝이다.

3) 3호 돌덧널무덤
구릉의 등줄기 맨 아래에 위치한 3호 돌덧널무덤은 풍화 암반층을 수직으로 파고 조성되었고 장축방향을 남북으로 두었다. 북벽 일부와 양쪽장벽의 일부만 남고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출토된 유물은 없다. 돌덧널무덤의 규모는 잔존남북 길이 150㎝, 잔존 너비 260㎝, 깊이 64㎝이다.

(2) 움무덤
석봉동 정수장부지 내 남사면 지역에서 조사된 움무덤은 총 9기가 조사되었는데 대부분 산등성의 줄기에 자리잡고 있고, 9호 움무덤만 구릉의 서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산등성이의 줄기에 위치한 8기는 모두 암반층을 파고 조성되어 평면형태가 정연하지 않으나 대체로 장방형에 가깝다.

1) 1호 움무덤
1호 움무덤은 3호 돌덧널무덤과 인접되어 있는 무덤으로 암반 층을 장방형으로 파고 조성되었다. 장축을 남북방향으로 두었으며 암반 층을 파고 조성되어 바닥과 벽이 정연하지 않다. 북쪽 벽 일부가 과수나무의 거름구덩이에 의해 일부 교란되었다.
매장 주체부에는 출토된 관못으로 보아 목관을 그대로 안치하였던 것으로 판단되며 이 매장 주체부와는 별도로 북쪽 벽에 매장 주체부 바닥보다 높게 따로 부장 공간을 마련하였다.
이 부장공간의 바닥에는 원형의 구덩이를 파고 이 안에 바닥이 둥근 청동 합 1점을 엎어진 채 부장하였다. 또한 3호 돌덧널무덤과 인접해 지표에서 청동수저 1점이 수습되었는데 이 1호 움무덤이 교란되면서 흘러나간 것으로 판단되었다. 1호 움무덤의 규모는 남북길이 92㎝, 너비 264㎝, 깊이 69㎝이다.

2) 3호 움무덤
1호 움무덤에서 경사면 아래로 약 4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3호 움무덤은 암반층을 장방형으로 파고 조성되었다. 앞에서 설명한 1호 움무덤과 마찬가지로 암반층을 파고 조성되어 바닥과 벽이 정연하지 않다. 내부에서 관못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목관을 그대로 안치하였던 것으로 판단되며 바닥에서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해동중보(1097년) 1점이 출토되었다. 3호 움무덤의 규모는 남북길이가 84㎝, 동서너비 124㎝, 깊이 20㎝이다.

3) 5호 움무덤
5호 움무덤은 3호 움무덤에서 경사면 아래로 약 8.5m정도 떨어져 위치한다. 암반층을 땅콩 모양으로 파고 조성되었는데 다른 움무덤과 마찬가지로 암반층을 파고 조성되어 평면형태가 정연하지 못하다. 묘광 안에는 남쪽 부분 바닥을 지름 51㎝, 깊이 26㎝로 다시 원형으로 굴토하여 부장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푼주형의 토기를 놓았다. 또 북쪽 벽에 가까운 바닥에 굽을 가진 청동 합 1점, 청동수저 1점, 청동 젓가락 1점이 놓여져 있었고 중앙부분의 바닥에서도 불명의 철기 1점이 출토되었다. 5호 움무덤의 규모는 남북길이가 82㎝, 동서너비 124㎝, 깊이 20㎝이다.

4) 8호 움무덤00-2.jpg
8호 움무덤은 4호 움무덤을 파괴하고 조성되었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 남쪽부분 일부가 교란되었다. 조사당시 재부토에서 일부 할석이 확인되어 돌덧널무덤으로 추정하였으나 모두 바닥에서 떠 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3호 돌덧널무덤이 파괴되면서 내부로 흘러들어 온 것으로 판단되었다. 출토되는 관못으로 보아 목관을 그대로 안치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바닥에 청동 합 2점과 청동수저 1점, 유색이 좋지 않은 청자 소병 1점이 출토되었으며 8호 움무덤의 규모는 남북길이가 135㎝, 동서너비 243㎝, 깊이 57㎝이다.

 
 

 
2. 용호마을 입구 도수관 시설지역
(1) 집자리00-3.jpg 용호동 하용호 마을 입구의 도수관 시설지역에서 집자리는 모두 2기가 조사되었는데 통일신라시대의 집자리가 삼국시대의 집자리를 파괴하면서 조성되었다. 또한 이 통일신라시대 집자리도 후대의 경작 등의 교란과 파괴로 인해 상당부분 파괴되어 어깨선 일부와 바닥일부만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집자리의 바닥에서 약간의 토기편을 수습하였다.

(2) 구석기시대 유물층 발굴
구석기시대의 문화층이 확인된 용호마을은 금강과 용호천이 합류되는 지점에서 동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유적은 해발 약 40m미터 높이에 위치하며, 금강의 강바닥보다 약 18m 정도 높은 곳에 있다. 발굴된 유적의 지층은 크게 5개 층으로 구분되는데 위에서 아래쪽으로 가며 각 지층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지 층

◎ 1지층
1지층은 두께가 약 25㎝로 표토층에 해당하는 곳으로 경작 등에 의하여 많은 교란을 받았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조각과 함께 구석기시대의 뗀석기가 뒤섞인 상태로 출토되었다. 이곳 1지층에 대한 조사는 완료되었다.

◎ 2지층
2지층은 두께가 약 30∼40㎝의 갈색 찰흙 층으로 구석기시대의 1문화층에 해당한다.

◎ 3지층
3지층은 두께가 약 80∼115㎝ 정도인데 토양구조의 특징에 따라 3a층, 3b층, 3c층으로 세분된다.
- 3a층 : 짙은 갈색 찰흙 층으로 두께는30∼35㎝이며 구석기시대의 2문화층에 해당한다.
이 지층에 대한 조사는 부분적으로 실시되었다.
- 3b층 : 황갈색 찰흙 층으로 두께는 40∼45㎝이며 구석기시대의 3문화층에 해당한다. 이 지층에 대한 조사는 부분적으로 실시되었다.
- 3c층 : 모래질이 많이 함유된 암갈색 찰흙 층으로 두께는 10∼15㎝이다. 이 층은 일부 지역에서만 확인되었으며, 비문화층으로 추정된다.

◎ 4지층
4지층은 두께가 약 50∼70㎝이며 토양구조의 특징에 따라 4a층과 4b층으로 세분된다.
- 4a층 : 회갈색의 모래질 뻘흙층으로, 구석기시대의 4문화층에 해당한다.
- 4b층 : 망간 또는 철산화물이 검은색을 띠며 집접된 지층으로 비 문화층으로 추정된다.

◎ 5지층
5지층은 강 자갈층으로 두께는 2∼3m에 이르며 비 문화층이다. 5지층은 기반암 위에 퇴적되었다.

2) 문화층

◎ 1문화층
1문화층(2지층)은 자갈돌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땐자리(40×50㎝), 석기제작터 등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석기가 발굴되었다. 석기 제작 터에서는 1㎝도 되지 않는 매우 작은 격지 수백 점이 집중되어 있었고 석영, 규질암, 이암, 유문암, 수정 등을 이용하여 만든 석기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석기의 종류로는 긁개, 밀개, 톱니날, 흠날 및 격지 등이 있다.

◎ 2문화층00-4.jpg
2문화층(3a지층)에서는 석영, 규질암, 이암, 유문암 등을 이용한 몸돌, 망치돌, 찍개, 톱니날식 찌르개, 갈린 자국이 있는 자갈돌이 출토되었는데 4문화층에는 없는 이암, 유문암 등의 석재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격지의 분포 관계로 보아 석기제작 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4문화층
4문화층(4a지층)에서 석기의 암질은 석영과 규질암 종류뿐이다. 불땐 자리(40×50㎝)로 추정되는 유구가 있다. 20㎝를 넘는 큰돌이 상당히 규칙성을 보이며 놓인 것으로 보아 당시의 집자리 구조가 확인될 가능성이 높은 문화층이며 이곳에서 여러면석기, 몸돌, 찍개, 망치돌, 긁개, 톱니날, 격지 등이 발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