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촌동 유적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7
조회
67
송촌동 유적
1. 제1지구 토광묘 유적 | |
(1) 토광묘 상황 1) 1호 묘 구릉의 정상부에 독립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유구는 표토의 20㎝밑에서 확인되었다. 유구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 보강토는 북서장벽 쪽으로 넓게 나타나고 있으며, 남서 단벽의 목관 보강토에서는 철기조각 1점이 박혀 있다. ![]() 2) 2호 묘 ![]() 2호 묘는 유일하게 구릉의 북쪽 사면에서 확인되었다. 유구는 남단 벽의 일부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유실되었다. 유물은 남단 벽에서 적갈색 완 1점과 그 위에 얹혀진 회청색 경질호 1점이 있다. 유구의 크기는 (80)×90×10㎝이다. 3) 3호 묘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한 3호 묘는 말각 장방형의 묘광으로 유물은 동단 벽에 회청색 경질원저대(灰靑色硬質圓低壺) 2점, 적갈색 연질본(赤褐色軟質鉢) 1점, 유리구슬 1점이 출토되었다. 유구의 크기는 380×65×10㎝이다. 4) 4호 묘 3호 묘 남쪽에 위치하는 장방형의 유구인데 묘광은 경사면에 위치한 관계로 모두 유실되고 바닥면 일부만 남아있다. 유물은 양단 벽에서 토기가 각 1점씩 노출되었는데 북동단벽에서 적갈색 평저 완 1점, 남서 단벽에서 회청색의 원저호가 1점 출토되었다. 유구의 크기는 280×80×10㎝이다. 5) 5호 묘 구릉의 정상부에서 남쪽 사면으로 치우쳐서 위치하고 있는 5호 묘는 구지표를 'ㄴ'자형으로 굴착하였으나 남장 벽은 확인되지 않는다. 유물은 묘광 중앙에서 철겸 1점, 서단 벽에서 적색연질본편(赤色軟質鉢片)이 출토되었다. 유구의 크기는 280×80×30㎝이다. 6) 6호 묘 3호 묘의 남서쪽에 위치한 6호 묘의 출토유물은 북동단벽에서 적갈색 완 1점, 남서단벽에서 회청색 단경호 2점, 유구의 중앙에서 철기 조각이 출토하였다. 유구의 크기는 330×100×30㎝이다. 7) 7호 묘 6호 묘의 남쪽에 위치하며 유구의 남서단벽 일부만 남아 있고 모두 유실되었다. 유물은 묘광의 바닥에서 20㎝ 정도 뜬 위치에서 회청색 경질의 원저호가 출토되었고 유구의 크기는 170×(80)×30㎝이다. 8) 8호 묘 8호 묘는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한 장방형의 유구로 주변의 지형은 파괴되었다. 유물은 남단벽에서 회청색 경질의 원저호 2점이 출토되었으며 유구의 크기는 210×100×45㎝이다. 9) 9호 묘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한 9호 묘는 표토층을 제거하면서 도질 단경호가 노출되었고 유구는 방형이며 크기는 170×?×55㎝이다. 10) 10호 묘 구릉 정상부의 길게 형성된 평탄면에 위치한다 묘광은 석비례층 암반을 'ㄴ'자형으로 파서 축조하였다. 유물은 양단벽에 부장하였는데 북동 단벽에는 흑색평저완(黑色平底 ) 1점, 회청색경질원저대(灰靑色硬質圓低壺) 2점이 확인되고 남서단벽 쪽에는 회청색와질원저대(灰靑色瓦質圓低壺) 2점, 유구의 중앙부에는 남동장벽 쪽에서 철촉 2점, 도자, 낫, 철기조각이 각 1점 출토되었다. 유구의 크기는 420×110×10㎝이다. 11) 11호 묘 구릉의 남쪽사면에 위치한 11호 묘는 장방형의 유구이다. 유물은 남단벽에서 도질원저호 1점과 적갈색 연질 장란형호가 1점 노출되었으며 유구의 크기는 240×100×30㎝이다. 12) 12호 묘 12호 묘는 구릉의 남쪽 사면에 11호와 중복되어 위치한다. 유물은 남단벽에 도질단경호가 2점 노출되었고 북단벽에 평저발이 1점 출토되었다. 유구의 크기는 390×90×30㎝이다. 13) 13호 묘 13호 묘는 구릉의 정상부의 평탄면에 위치한다. 장방형의 묘광에 내부에서 크기 200×50㎝인 목관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으며 유물은 목관선 바깥의 북동단벽에 회청색 경질호, 회청색 와질호 각 1점이 부장되었고 유구 내부의 중앙에서 낫 1점이 노출되었다. 유구의 크기는 290×90×15㎝이다. 14) 14호 묘 구릉의 산등성 상에 위치한 14호 묘는 방형의 구조를 갖고 있다. 유물은 원저대(圓低壺) 4점, 발(鉢) 1점이 노출되었고 유구의 크기는 190×95×30㎝이다. 15) 15호 묘 15호 묘는 구릉의 정상부에 'ㄴ'자형으로 묘광을 만들었는데 북동단벽의 일부와 남동장벽은 유실되었다. 유물은 남서단벽에서 적갈색 연질완, 회청색 경질호, 적갈색 연질호, 흑색 와질호가 각 1점씩, 그리고 유구 중앙에서 화살촉, 도자, 철기조각이 출토되었다. 유구의 크기는 (250)×130×20㎝이다. 16) 16호 묘 14호 묘의 남서쪽에 위치한 16호 묘는 장방형의 유구로 내부에는 별다른 시설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북동단벽에서 회청색 경질대 2점, 적갈색 발 1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구의 크기는 340×95×70㎝이다. 17) 17호 묘 구릉의 남동쪽 사면에 위치하는데 석비례층 암반을 'ㄴ'자형으로 굴착하여 묘광을 축조하였으며, 17호 묘의 출토유물은 없다. 유구의 크기는 200×(50)×30㎝이다. 18) 18호 묘 구릉의 남동쪽 사면에서 암반을 'ㄴ'꼴로 묘광을 파고 적갈색장난형(赤褐色長卵形)의 항아리를 눕혀서 관으로 사용한 옹관묘(甕棺墓)이다. 구연부는 남서쪽이며 묘광의 크기는 80×50×20㎝이다. 19) 19호 묘 19호 묘는 구릉의 남쪽 사면에 'ㄴ'字形으로 굴착하여 무덤을 조성하였다. 유물은 동단벽에서 적갈색발(赤褐色鉢) 1점, 남서단벽에서 회청색 경질호, 적색 연질완편이 출토되었다. 유구의 크기는 520×120×60㎝이다. |
2차 발굴유적 |
1. 제2지구 주거지 유적 | |
제1차로 발굴 조사한 토광묘 유적지인 구릉지대에서 동북으로 계속되는 일단 높은 구릉지대를 발굴 조사하였는데, 유적지는 앞의 토광묘 유적지의 구릉이 우배형(소등모양)대지를 이루고 이 구릉에 토광묘와 옹관묘가 분포 배치되었는데 이곳에서 다시 동북쪽 높은 곳에 경부고속도로 남쪽에 반형(소반모양)대지에 토광묘 유적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따라서 추가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의외로 앞의 토광묘는 발견되지 않고 토광묘와 동일시대로 추정되는 주거지(집자리)가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2기인데 모두 수혈식 주거지이고 화재로 인한 소실된 유지가 남아 있어. 제1호 주거지는 산등성 정상부에서 조사되고 다시 2호 주거지의 서쪽에서 고려시대의 석곽묘 1기가 조사되었다. (1) 주거지 상황 1) 1호 주거지 ![]() 산등성의 정상부에 얕은 굴광을 파고 설치한 1호 주거지는 북쪽은 인천제철 광고탑으로 인하여 조사가 불가능한 때문으로 정확한 크기나 장축방향을 알 수 없으며 평면은 말각장방향으로 추정되나 불분명하다. 내부에는 동벽을 따라서 통나무의 숯들이 주거지 내부를 향하여 넘어져 있었다. 기둥구멍은 남·동쪽 내부벽에 붙어서 직경 20㎝내외의 것이 2개씩 발견되었고, 내부에는 10㎝의 기둥구멍이 발견되었다. 출토유물은 중앙부에 타날문 파수부호 1점, 시루 1점, 회청색 경질원저호 1점 등이다. 2) 2호 주거지 ![]() 1호 주거지의 남서쪽 사면에 위치하는 말각방형에 가까운 주거지로 크기는 370×320×10-100㎝이며, 구릉을 'ㄴ'꼴로 파고 주거지를 설치하였기 때문에 남서쪽은 매우 낮아서 구 지표면과 경계선 정도만 확인된다. 주혈은 주거지의 내부에서만 발견되었는데 주로 북쪽 내부 쪽에 밀집되어 있었으며, 직경 20㎝정도의 것은 벽을 따라 배치되고 있고 직경 10㎝의 것은 그 사이에 배치되고 있다. 남동벽에는 저장공과 같은 것이 100×50㎝정도의 부정형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다. 주거지의 어깨 선 밖에는 기둥구멍이 발견되지 않았다. 유물은 파수부호 1점, 철겸편 1점, 불명토기 1점 등이 출토되었다. (2) 고려 석곽묘 상황 2호 주거지에서 남서쪽으로 10m정도 떨어진 사면에 위치하는데 크기는 200×100×50-10㎝이다. 무덤의 축조는 등고선과 직교하게 구지표를 90㎝정도 'ㄴ'자로 파고, 할석을 이용하여 내벽을 쌓아 올렸으나 남서 단벽은 모두 유실되었다. 바닥에는 관이 놓일 곳에는 편평한 할석을 일차로 깔고, 그 위에 목관을 안치한 것으로 확인된다. 부장품은 남서장벽을 따라서 토기류 4점, 자기 1점을 부장하였고 머리부분에는 동제 뒤꽂이가 부장되어 있었다. |
2. 제3지구 고인돌 유적 | |
제3지구 고인돌 유적은 앞의 제1차 조사한 제1지구 토광묘유적에서 동남쪽, 송촌 산 14번지의 반형(소반모양)대지 같은 구릉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고인돌은 부근에 위치한 비래동 고인돌 2기와 같은 분포지역의 일부로 생각된다. 1996년 5월부터 발굴 착수하여 동년 7월에 종료하였는데 부정형 반석으로 된 탱석이 파괴되었고 그 밑에 정연한 장방형 석곽의 지하구조가 축조되어 있었다. 탱석(뚜껑돌)이 파괴된 것은 도굴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며 하부구조도 부분적으로 교란되어 있었으며 유물이 없음도 도굴 때문인 듯하다. (1) 고인돌 상황 부정형을 띠고 있는 상석은 조사전 이미 파괴되어 있었으며, 성혈 등의 흔적과 지석은 확인할 수 없었다. 석곽은 편평한 할석과 천석을 이용하여 네 벽을 쌓았고 바닥에는 얇은 할석을 깔았다. 크기는 150×70×5-10㎝이고 출토유물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