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상동들말두레농요-1
카테고리
무형문화재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7
조회
34
목상동 들말두레소리(일노래)-1



1. |
유래와 전승 |
우리나라에 전승되어오는 전통 민요로는 <농업노동요>로 보리타작소리, 모찌기소리, 모심기소리, 논매기소리 등이 있으며, <어업노동요>는 해녀노래, 뱃노래, 멸치후리는 노래, <길쌈노래>는 물레노래, 삼삼기노래, 베틀노래, <의식요>는 상여소리, 달구질요, 진토굿노래, <생활요>는 시집살이요, 팔자요, 맷돌노래, <수공업노동요>는 양태노래, 탕건노래, <운반노동요>는 목도소리, 방앗돌 굴리는 노래 등으로 분류되는데 "들말의 두레소리"는 <농업노동요>에 해당한다. 농요 및 모든 일노래가 지역마다 가사와 멜로디는 다르지만 한 사람이 먼저 선창을 하고 뒤에 일행들이 일제히 따라 부르는 형태로 들에서 모내기나 김매기 등 일을 할 때 부르는 노래인데 노동요의 모든 형태는 선창 후 제창이라는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은 기본적인 틀로 되어 있다. 들말 두레농요가 전승되는 목상동 지역은 금강과 갑천 유역의 넓은 들에 전답을 경작하는 농업 종사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많은 농요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목상동 들말두레소리가 비교적 원형을 보존 전승되고 있다. 들말에서는 농번기에 집단적으로 공동 작업을 벌이는 일이 있는데 이것을 "두레"라고 한다. 대개 모찌기, 모심기, 김매기, 토산 쌓기 등의 일이 두레 감이었다. 두레가 나면 보통 한집에 한 사람씩 동원되는데 공동 작업을 통해서 힘든 일을 흥겹고 즐거운 마음으로 좀 더 쉽게 끝낼 수 있는 것이 두레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두레를 나갈 때는 풍장을 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논에 도착하여 농기를 세워놓고 모를 찌고, 모를 심는데 이때 심신을 달래고 지루함과 즐거운 마음으로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하여 노래를 부르는 모 찌는 소리는 장단 없이 소리꾼의 선소리에 맞추어 후렴을 하고 모를 심을 때는 풍장을 치면서 흥을 돋운다. 모심기는 일반적으로 망종(芒種) 전후 3일부터 하지(夏至) 무렵까지 한다. 모를 심은 후 7∼10일 간격으로 논매기를 하는데 처음 매는 것을 초벌매기(아시매기), 두벌매기(이듬매기), 세벌매기(만물매기)를 한다. 그러나 문평 들말에서는 아시매기와 이듬매기로 김매기를 끝내고 만물은 피사리로 대신하였다. 들말은 토양이 기름진 데다 물 사정이 좋아 작업이 용이했던 까닭에 만물을 맬 필요가 없었다. 논을 맬 때는 아시매기 소리와 이듬매기 소리가 각각 다른데 초벌 맬 때는 호미로 흙을 파 엎기 때문에 힘이 들어 느린 가락의 소리이며 두벌매기는 풀을 뽑는 것이 아니고 손바닥으로 논바닥을 문지르며 풀을 흙 속에 쑤셔 넣은 후 논물을 뺀 다음 말려서 없앤다. 두벌매기 소리는 초벌매기에 비해 힘차며 처음에는 느린 가락으로 시작하여 마무리 부분에서 빠른 가락 소리로 경쾌하게 끝을 맺는다. 이처럼 순수한 우리 가락이며 농경문화의 집합체인 들말 두레소리는 조상 대대로 불려 왔으나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으로 전래되지 못하고 대부분이 잊혀져 오다가 광복 이후 60년대 중반까지 두레를 조직하여 농악을 울리면서 흥겹게 짓던 풍속이 곳곳에 되살아나는 듯하였지만, 60년대 후반부터 기계화 영농과 제초제의 사용으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일부분만이 전해지고 있는 것을 생존해 있는 촌로들과 선소리꾼을 찾아 우리 고장에서 불리던 농요 가사를 수집 정리하고 조사, 연구 및 고증을 통하여 오늘에 재현하게 된 것이다. 들말 두레농요는 한솥밥을 먹으며 공동 작업을 통해서 공동체 의식의 일깨움과 힘든 일을 노래로써 하루를 즐거이 보내는 조상의 슬기와 지혜를 엿볼 수 있다. |

2. |
문평의 자연환경과 두레소리의 생성배경 |
들말 두레소리는 목상동 문평 일대에서 전승된 농업 농요이다. 목상동은 대전 대덕구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법정동이며 목상동에 소속된 문평은 지리적으로는 대덕구 북서쪽 끝에 위치하고, 서쪽은 갑천, 북쪽은 금강과 인접해 있는 지역으로 갑천 하구와 금강 상류와 만나는 지점의 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지리학자인 이중환은 시냇가의 마을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은 첫째가 대전의 갑천변을 들 수 있고, 그 둘째가 전주의 율담이며 다음으로는 청주의 작천을 꼽은 바 있다. 이처럼 지리학자 이중환이 언급한 바와 같이 갑천이 흐르는 지역의 주변에는 들이 넓고 산세가 수려하여 선사시대 이래 찬란한 민속 문화유산을 이 땅에 남겼다. 두레농요와 각종 민속 문화가 전승되고 있는 문평 들말은 목상동 지역 내에서 전통마을로 넓은 들이 있어 먼벌 또는 문평(文坪)이라고 하였다. 문평 지역은 갑천이 금강 상류와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넓은 평지는 농경지로 이용하였으나 여름철 비가 많이 오면 금강이 범람하여 홍수 피해가 컸던 지역이다. 그래서 문평은 옛날에는 주로 밭으로 농사를 하였고, 일제 때에는 배나무 밭이 많았다. 문평과 주변의 들을 새알들이라 하는데 여기서 생산되는 무는 전국 최고의 품질로 유명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금님께 진상하였다고 한다. 해방 후 50∼60년대까지도 무 재배가 활발하였는데 그 후 수리조합이 만들어지면서 점차 밭을 논으로 개간하여 벼농사를 많이 짓게 되었다. 문평은 금강과 갑천이 만나는 지점이라서 비가 많이 오면 양쪽의 물이 합쳐지면서 역류하여 논과 밭, 그리고 마을로 범람하여 홍수 피해에 항시 노출되어 있었던 지역이었다. 따라서 마을에서는 평상시에는 강에서 나룻배로 사용하고 수해 때에는 피난용으로 100명 이상이 탈수 있는 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산이 없는 넓은 들판이라 수해가 나면 대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마을 앞뜸과 뒷뜸에 하나씩 인공적으로 토산을 높이 쌓았다. 토산에는 큰 건물을 지어 놓고 수해 때에는 가재도구·곡식 등을 운반하여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토산의 건물은 앞뜸 것이 규모가 크고, 뒷뜸의 토산과 건물은 앞뜸 것에 비하여 조금 작았다. 예전에는 두레 활동을 통해 토산을 쌓고 일 년에 한 번씩 토산제를 지냈다. 그리고 문평의 마을은 넓은 들에 위치하여 생업이 농업이었고, 농사와 관련된 두레 풍속이 예전에서부터 전해져, 다른 지역에 비해 두레가 활발하였다. 때문에 문평의 들말 두레와 함께 소리는 토박이들을 중심으로 지금까지도 전승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전승되는 노래는<지경다지는 소리>, <모찌기 소리>, <모심는 소리>, < 논맴소리>, <보리타작 소리>, <지경다지기소리>, <상부소리> 등이 있으며 들말의 두레소리는 고석근씨 전승자에 의하여 재현되어 1996년 제37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하여 대통령 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를 기념하고 두레를 계승코자 을미기공원 내에 두레 전수회관을 건립, 두레소리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외에도 농업과 관련된 생활문화와 홍수에 관련된 각종 민속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3. |
들말 두레소리의 특징 |
대전은 지정학적으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삼남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고 거쳐 가는 지역이기에 민요 또한 3개도의 복합 민요권 지대로 볼 수 있다. 문평 들말의 '모심는 소리'와 모찌는 소리 '뭉치세'는 청원지역의 영향을 받았고 '농부가형 상사' 논맴 소리는 전북의 농부가형 상사가 복합되어 문평 지역의 향토소리로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두이야 저하' 의 논맴 소리는 타지방으로부터의 전래지가 불확실한 희요(稀謠)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해 인근 타지역 민요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하고 고유한 우리 지역의 소리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대덕구 문평 들말에서 전승되는 두레농요(어두이야 저하 등)는 들말에서 4대째 살아오다 작고한 소리꾼 고동근(고석근의 장형)의 뒤를 이어 고석근(高錫根)이 기능보유자로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문평 들말의 소리는 오래전부터 주민들이 불러오던 노동요로 농사일의 피로를 덜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던 문평 지역의 특유의 구전민요이다. 농요는 집단적인 노동요이기 때문에 사설(辭說)이나 선율이 그 지방의 사정에 맞게 짜여 있으며, 대전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대부분의 노동요가 그렇듯이 들말 두레농요 또한 부르는 방법은 선소리꾼의 앞소리를, 농부들이 후렴으로 받아넘기는 식으로 이어지는데 처음에는 길고 구성진 가락의 긴 소리에서 시작되어 힘든 것을 잊고자 하는 흥겨운 가락으로 좀 더 빨리 행동할 수 있다고 보이는 휘모리인 상사디야로 끝을 맺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선창하는 기능보유자 고석근씨의 창법과 사설이 독특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이 일게 하고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따라서 아름답고 흥겨운 가락에 농사를 천직으로 삼았던 농민의 마음을 노래했던 들말두레소리는 대전의 민속으로 우리는 보존·계승 발전시켜야 할 의무를 지닌다. |

4. |
들말 두레소리 해설 |
◎ 토산 다지는 소리 토산 다지는 소리는 들말에서 토산을 쌓을 때 지경을 다지며 부르는 노래로, 그 옛날 선조들이 쌓았던 토산을 개보수하는 일이다. 장마철 홍수로 인해 떠내려간 흙을 보충하고 무너진 축대를 쌓은 뒤 일심동체가 되어 지경을 다진다. 모든 주민들이 품을 내어 청장년들은 지게에 흙을 날라 오고 아낙네들은 흙을 담아 나른다. 가래질과 지경을 다지면서 선소리꾼의 구성진 소리에 맞춰 토산을 다진다. |
<노래사설> | ||
(메김소리) | (받는소리) |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
계룡 명산 명기를 받고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
계족 - 산 정기를 모아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
부모 - 산 정기를 받고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
이-터 명당에다 토산을 쌓고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
아들을 낳면 효자를 낳고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
딸을 낳면 열녀를 낳아라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
소를 낳면 대우를 낳고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
말을 낳면 용마를 낳고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
개를 낳면 찹쌀개를 낳고요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
꼭꼭 다져서 토산을 쌓고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
온갖 재앙 몰아내자 | 어기 어차 쿵쿵 다지세 | |
어기 어차 | 어기 어차 | |
어기 어차 | 어기 어차 | |
어기 어차 | 어기 어차 | |
어기 어차 | 어기 어차 | |
다-쌓았네 | 와아- |
◎ 뭉치세(모찌기 소리) '뭉치세' 노래는 서로 품앗이를 하여 모를 심을 경우 모내기할 모를 모판에 쩌낼 때 모자리에 빙 둘러앉아 모를 찌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앞소리를 하면 모두가 뒷소리를 한다. |
<노래사설> | ||
(메김소리) | (받는소리) | |
뭉치이고 뭉치이세 얼카산으로 뭉치이세 | 뭉치고 뭉치세 얼카산으로 뭉치세 | |
오늘 심을 못자리는 스마지기 못자릴세 | 뭉치고 뭉치세 얼카산으로 뭉치세 | |
오늘 심을 못자리는 이 뱀이에서 뭉쳐내고 | 뭉치고 뭉치세 얼카산으로 뭉치세 | |
내일 심을 못자리는 건너 뱀이로 넘어가세 | 뭉치고 뭉치세 얼카산으로 뭉치세 | |
이 배미를 다 찌면은 어떤 배미루 옮겨가나 | 뭉치고 뭉치세 얼카산으로 뭉치세 | |
이 못자리를 다 뭉치며는 저 배미루 건너가세 | 뭉치고 뭉치세 얼카산으로 뭉치세 | |
이 못자리를 다 뭉쳐야 해지기전에 다 심는다 | 뭉치고 뭉치세 얼카산으로 뭉치세 | |
다 뭉쳤네 다 뭉쳤네 얼카산으로 다 뭉쳤네 | 뭉치고 뭉치세 얼카산으로 뭉치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