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의 역사문화

은진 송씨 정려각(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카테고리
정려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7
조회
81
은진 송씨 정려각(恩津宋氏 旌閭閣)

 

* 분   류 : 정 려
* 구분 : 시 유형문화재 제24호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 205-5
* 수   량 : 1동
* 구   조 : 정면1칸, 측면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집.
* 재   료 : 목조
* 연   대 : 1729년(영조5)
* 개   요 : 이 정려의 주인은 효녀 은진 송씨로서 송담 송남수의 딸로 계림군 김정의 후손인 김광유의 아내이며 송애 김경여의 어머니이다. 송씨는 회덕현 백달촌 중리에서 태어나 22세에 김광유와 결혼하였으나 몇 달만에 남편이 죽었다. 남편이 죽었을 때 그녀는 임신 중이어서 남편을 뒤따라 죽으려고 하였으나 부친의 만류로 죽지 못하고 부모에게 귀의하여 유복자 경여를 훌륭하게 키웠다. 유복자 김경여는 조선 효종 때의 문관으로서 옳은 일과 나라 일을 많이 한 충신이다.

027.jpgblank.gif김경여는 경주가 본관이며 동춘 송준길이나 우암 송시열보다 10여살 연상이지만 한 마을에 살면서 사계 김장생 문하에서 동문수학하였으며 효종 때 충청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그가 자라서 성공한데는 어머니 송씨의 덕이 크며 송씨는 자식에게 뿐만이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이 노환으로 백약이 무효할 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뼈를 갈아 복용시켜 장수케 하여 90상수(上壽)를 누렸다 한다. 그는 효녀로서, 어머니로서 정성이 지극하여 1729년(영조5)에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 정려각은 사방 1칸의 작은 규모이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품격 높은 격식을 갖추고 있다. 일각대문을 두고 주위를 담으로 둘러싸 정려각을 보호하고 있으나 담 밖의 주변은 도심화가 이루어져 원래의 경관을 사라지고 말았다.

장대석 외벌대로 기단을 만들고 낮은 방형 초석 위에 다시 장초석을 놓았다. 이 장초석은 약 3자 반 정도의 높이에 하반부는 4각형으로 하고 상반부는 네 모서리를 쳐서 8각형으로 가공하였다. 기둥은 원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 부분에서 창방으로 기둥 사이를 걸어 두었다. 공포는 기둥 상부에만 짜 올렸는데 연화문이 초각된 2익공식이다. 창방 중간부분에서는 창방과 장여 사이에 화반을 하나씩 설치해 두었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으로 만들고 서까래가 모이는 중심부에는 '井'자 모양의 장선틀을 짜고 널빤지를 끼워 마감하였다.

이 정려각에는 다른 것과는 달리 단청이 없지만 기둥머리의 공포와 화반 초각이 화려하여 단청이 되어 있는 것만큼 장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