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의 역사문화

고흥 유씨 정려각(시 유형문화재 제25호)

카테고리
정려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7
조회
46
고흥 유씨 정려각.비(高興柳氏 旌閭閣.碑)

 

* 분   류 : 정 려
* 구   분 : 시 유형문화재 제25호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중리동 산2-1
* 수   량 : 건물1동, 비석1기
* 구   조 : 정면1칸, 측면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집
* 재   료 : 목조(단청)
* 연   대 : 1653년(효종4)
* 개   요 : 유씨 부인은 쌍청당 송유의 어머니이다. 그는 고려말인 1371년(공민왕 20) 상서를 지낸 호안공(胡安公) 유준(柳濬)의 딸로 태어나 일찍이 진사 송극기(宋克己)와 혼인하였으나 약관의 나이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22세에 홀몸이 되었다. 청상의 몸으로 유복자 송유와 함께 개성의 친정에 살고 있었으나 가엽게 여긴 친정에서 재혼을 종용하였다. 당시 사회풍습으로 재가는 일반적인 일이었다. 얼마 후 풍습대로 친정에서 재혼을 서두르자 한밤중에 아들을 데리고 500리가 넘는 시가인 이곳 회덕으로 내려왔다. 재혼에 뜻이 없었음이 분명했다. 그 후 유씨 부인은 시댁에서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아들을 훌륭한 선비로 성장시켰다. 생전에 그는 효행이 뛰어나 그 소문이 자자했다. 1452년(단종 즉위년)에 세상을 뜨고 나서 약 200년 후인 1653년(효종4)에 그의 정절을 기려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 구릉지에 주위를 담으로 에워싸고 그 안에 남향으로 배치하고 있다. 정면, 측면 각 1칸의 정려각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작은 규모이지만 고풍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028.jpgblank.gif장대석 외벌대로 기단을 만들고 초석을 놓은 다음 그 위에 8각 장초석을 세웠다. 초석이 높아지면서 자연히 기둥이 짧아졌다. 기둥은 원주를 사용하고 있다. 기둥 상부에서 단면이 둥근 창방을 걸고 그 위에 공포를 올렸다. 공포는 기둥 상부, 그리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하나씩 짜 올렸다. 공포는 익공식이며 연화, 봉두 등이 조각되어 있다. 내 2출목, 외 1출목으로 내부 살미는 파련문을 초각하여 매우 화려하다. 특히 기둥 사이의 공간포는 출목첨차의 하단을 연꽃 주변선 모양의 곡선으로 초각하고 당초문양을 그려 매우 화려하다. 측면의 하인방 아래는 부분에는 벽을 두고 하인방과 상인방 사이는 홍살을 끼워 두었다. 천장은 우물반자를 달아 마감하였다. 장초석을 비롯하여 정려각에 쓰여진 각종 재료가 견실하고 조각과 단청이 화려하여 조선 후기의 품격 높은 정려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문 옆에는 1665년(현종6) 동춘 선생이 비문을 짓고 우암 선생이 쓴 정려비가 서 있는데 정려를 받게 된 내력과 후대까지 정려를 보존해 주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