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의 역사문화

취백정(翠白亭)

카테고리
전통건축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7
조회
120
취백정(翠白亭)

* 분   류 : 시 문화재 자료 제9호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 188
* 수   량 : 1동
* 구   조 : 정면3칸, 측면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
* 재   료 : 목조
* 연   대 : 1701년(숙종27)
* 개   요 : 취백정은 제월당 송규렴이 1701년 (숙종27)에 강학처로써 금강(현,대청호 수로) 연안의 미호에 세웠다. 송규렴은 숙종 즉위년 이래 제월당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과 학문 연마에 전념하다가 숙종 6년 경신 대출척 이후 김석주의 권유로 다시 조정에 들어갔다. 각 조의 참판을 두루 거치고 홍문관 부제학, 성균관 대사성, 대사간을 맡았고 외직으로는 안변 부사와 충청감사를 지냈으며 다시 예조로 돌아왔는데 그때는 송시열이 왕세자(경종)의 책봉이 시기 상조라 반대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갔고 이어 사약을 받아 별세하는 커다란 정변의 해였던 숙종 15년(1689)이었다. 송규렴은 마침 태조의 영정을 받들고 전주에 갔다오던 참이었다. 그는 이에 벼슬을 버리고 재차 향리인 회덕에 돌아가 다시 학문에만 힘을 쏟았고 만년의 또 다른 강학처로서 이 정을 세웠던 것이다. 근 70세 되던 해인 1699년(숙종25)에 기사에 들어간 뒤 지중추부사가 되었고 숭정대부의 품계를 받기도 하였다. 그 후 정조임금이 친필로 '사호각'이라는 현판을 내렸는데 그 뜻은 중국의 신선이 넷이 살았다 해서 지어진 '상산사호'(商山四皓) 고사에서 따왔을 것이다. 대개 상량문은 당주 스스로가 짓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건물의 상량문은 제월당 스스로 지은 것이다. 사호각 현판은 광복 후 소실되었다. 취백정은 원래 미호서원의 부속채로 세웠으나 미호서원은 1729년(영조5) 송인명등 주장에 따라 다시 훼철되고 현재는 취백정만 남아 있다.

작은 일각대문을 세우고 주위로는 담을 두르고 있는 취백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평면은 우측에 2개의 마루방을, 좌측 1칸 통에는 부엌을 두었다. 2개의 마루방 전면 반칸은 퇴칸으로 하여 툇마루를 설치했다. 퇴칸 우측면은 벽을 막고 띠살문을 달았다. 우측 마루방은 전면에 큰 창호를 두어 옆면과 뒷면에 창호를 달아 대청마루와 같은 기능을 한다. 가운데 마루방은 앞뒤면 창호 하방에는 머름을 설치해 두었다. 부엌 상부는 다락방을 두었는데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있듯이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광으로 사용하지 않고 3면에 문을 달고 문 하방에는 머름을 설치하여 마치 누정에 오른 것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 다락을 이와 같이 적극적인 공간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는 흔히 볼 수 없다. 한정된 평면내에서 상층을 소극적으로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실용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막돌 외벌대로 기단을 만들고, 8각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다. 기둥머리에서는 장혀위에 굴도리를 걸었다. 부엌문을 제외하고 사방의 모든 문은 띠살문을 달았다. 그 중 우측의 마루방 정면 창호는 들어열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