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의 역사문화

산디 산신제

카테고리
산신제 및 샘고사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7
조회
60
장동 산디 산신제

 
* 분    류 : 민속신앙
* 구    분 : 산신제
* 시    기 : (음) 10월 3일 저녁 9시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 계족산
* 내    용 :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해마다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산신 제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만 어른들이 해내려 오던 것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하니 그 연원은 매우 오래되었다 하겠다. 계족산 밑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탓에 산짐승의 피해가 많았기에, 이를 막고자 하는 마음도 산신제를 지내게 된 주요한 원인이라고 한다. 매년 음력 10월이면 일년 농사를 지어 햇곡식을 제물 삼아 제를 지낸다. 제일이 최근에 초사흘로 정해졌다. 예전에는 제를 앞두고 마을에 초상이나 출산 등의 부정한 일이 생기면 연기하여 다시 날을 잡아야 했다. 제를 미루다 보니 번거로운 일이 생기게 되어 약 40여년 전(1950년대 초반)에 산신령님께 제사 올릴 때, 앞으로는 부정한 일이 있더라도 연기하지 않겠노라고 고(告)하고, 제일을 10월 3일로 고정시켰다고 한다.

제당은 마을 동쪽에 있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데, 전통건축 양식으로 지은 두칸 집이다. 본래는 당집이 없어 일정한 장소(산제 터)를 정해두고 제를 지내오다가, 밤에 너무 추워 힘이 들므로 산제당을 지었다고 한다. 왼쪽 방에는 위패를 모시고, 나무로 제작한 제상이 설치되어 있어, 이곳에 제물을 올리고 제를 지낸다. 또 그 옆방에는 제기가 보관되어 있는데, 예전부터 사용해 오던 것으로, 제 지내기 전에 미리 마을로 가져 와서 깨끗하게 씻어 가지고 올라간다. 제당 옆에는 산제 지낼 때 메 짓는데 사용하는 산제 샘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물은 산제를 지낼 때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샘 뒤편 즉 제당의 오른쪽에는 조그만 돌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는 촛불을 켰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당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 지내기 열흘 전쯤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제를 주관하는 고양주(공양주)와 축관, 음식 만들 사람 등을 선정하고, 제비를 걸립하는 등 산신제에 관한 일을 의논한다. 고양주는 제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관장하며, 축관은 축을 읽고, '음식 만드는 사람’은 제물을 마련하는데, 모두 생기복덕을 보아서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고양주는 제사 지내기 삼일 전부터 아침, 저녁으로 찬물로 목욕하고, 담배와 술은 먹지 않으며, 바깥출입을 삼가고 근신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금기를 지켜야 했던 까닭에 고양주 맡는 것이 어렵다 하여 1980년대 초반부터는 다섯 집을 단위로 하여 돌아가면서 고양주를 맡도록 한다. 축관 역시 동일한 방법으로 선출하며, 고양주와 축관을 낸 집을 제외한 나머지 집은 자연스레 짐꾼이 된다. 고양주와 달리 축관과 짐꾼은 제사 당일만 조심하면 된다. 이와 더불어 마을 사람들도 당일 날 만큼은 고기나 해산물 등의 비린 것을 먹지 않으며 근신한다.

고양주로 선출되면 사흘 전에는 제당에 올라가 청소를 하고 땔감을 마련해둔다. 이때 산제 샘도 품고 청소를 해두며, 당일에 사용할 땔감을 많이 마련해두어, 제 지낼 때 춥지 않도록 한다. 이렇게 하기를 사흘간 반복한다. 제 비용은 동계 기금의 일부와 호당 성의껏 추렴하여 마련한다. 제비가 마련되면 유사가 장에 가서 제물을 장만해 온다. 장에 가고 올 때는 부정 타지 않도록 서둘러 다녀온다.

당일 밤 9시경이 되면 고양주, 축관, 음식 만드는 사람이 제당으로 가는데, 이 때 제물은 짐꾼 두 세 명이 지게에 지고 따라 간다. 제물은 산제샘의 물을 이용하여 씻어서 제상에 올린다. 특이 고양주는 샘물을 이용하여 메를 지어서 솥채 올린다. 제물로는 이외에도 떡, 술, 돼지머리, 눈이 있는 명태, 대추, 밤, 곶감, 연시 등을 사용한다. 예전에는 통소를 제물로 올렸으므로, 산에서 직접 소를 잡아서 제물로 바쳤다. 이후 소 값이 비싸 소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대신 통돼지를 대신 올렸다. 당일 돼지를 몰고 산으로 가서 잡았는데, 이 때 산신령이 들을 수 있도록 돼지가 ‘꽥꽥’ 소리를 내게 한다. 이렇게 돼지 소리를 내야 제를 잘 지낸 것으로 여긴다. 통돼지를 사용할 때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진설을 하였다. 일단 돼지를 머리와 몸통을 나누어 다섯 등분한다. 곧 각각의 다리는 제단의 네 귀퉁이에 설치된 고기걸이에 걸고, 돼지머리는 정수리에 칼을 꽂아 제단 중앙의 떡시루 옆에 놓는다. 이렇게 모든 제물이 마련되면 제를 시작한다. 제의는 전형적인 유교식으로 행한다. 먼저 제물을 진설하고, 고양주가 ‘산신령님 오늘 저녁에 기도 드리러 왔으니 소찬이나 맛있게 잡숴 주십시오’라고 축원하며 헌작한다. 고양주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후 재배를 하면 축관은 축을 읽는다. 축을 읽은 후 다시 헌작을 하고 재배하면 고양주는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산신소지를 먼저 올리고, 이어 만동소지를 올린 후 고양주소지를 올리고, 호당 한 장씩 대주소지를 올리고, 마지막에 우마(牛馬)소지를 올린다. 호당 한장씩 올리기가 어려우므로 중노인, 장년, 청년, 아동으로 구분하여 소지 종이에 각기 이름을 써 두었다가 한 묶음씩 묶어서 올리기도 한다. 소지를 올릴 때에는 각기 형편에 맞는 덕담을 한다.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모든 제의가 끝나는데, 제의가 끝났어도 고양주는 무릎을 꿇고 앉아 새벽닭이 울 때까지 기도를 드린다. 첫닭이 울면 철상하고 하산한다. 철상을 하기 전에 제물로 올렸던 메로 음복을 하는데, 정성을 드린 밥이라서 인지 다른 반찬이 없어도 꿀맛 같다. 제관 일행은 하산하여 고양주의 집으로 가서 음복을 하며 논다.

산신제를 잘못 지내면 산짐승이 내려와 마을의 가축을 잡아가거나 피해를 주는 일이 있다. 어느 해인가 산짐승의 피해를 크게 입기도 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주민들은 산신제를 잘못 지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양주가 부정을 범했거나 정성이 부족하였기 때문으로 간주한다. 그럴 경우에는 고양주의 집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산신제를 한해도 거르지 않고 지냈기에 마을이 큰 재난이나 국난 속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한 예로 6·25 전쟁 때에도 희생자가 하나도 없었고, 군대에 간 청년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귀가했다고 한다. 이처럼 마을이 평안한 것을 주민들은 산신의 가호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