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동 거리(장승)제
카테고리
탑제 및 탑신제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7
조회
60
법동 거리(장승)제
* 분 류 : 민속신앙 * 구 분 : 시 민속자료 제1호(석장승, 돌장승)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77-8, 95-2 * 수 량 : 2기(남,여장승) * 규 모 : 남장승140㎝, 여장승72㎝ * 재 료 : 화강암 * 연 대 : 1700년대 ![]() * 개 요 : 법동사거리 부근에 석장승 2기가 마주보고 서 있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장승으로 대전지역에 남아 있는 돌장승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장승으로 손꼽힌다. 법동 장승은 본래는 나무장승이었으나 약 300년전 법천골의 갑부였던 송민노가 사재를 털어 지금의 돌장승으로 바꿔 세운 것이라 전해진다. 남장승은 네모난 화강암의 돌기둥을 이용하여 윗부분에 얼굴을 새기고 가슴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 명문을 새겼다. 외형은 부리부리한 퉁방울 눈과 일자형으로 꽉 다문 입을 새겨넣어 무뚝뚝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장승의 외형은 무섭기보다는 푸근한 인상을 주며, 평범한 촌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남장승 곁에는 길쭉한 선돌이 함께 서 있는데, 이는 남성을 상징하는 돌로써 자손의 번창과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마을에서는 이것을 아기 장승이라 부르고 있고, 단지 큰 장승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 그리고 여장승 옆에는 남장승과 대조를 이루는 타원형의 선돌을 세워 놓았는데 생김새로 보아 여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남녀의 결합에 의한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을에서는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흩날 저녁이면 장승 앞에서 거리제를 지낸다. 본래는 산신제를 지내고 내려와 거리제를 지내는데 지금은 거리제만 지내 오고 있다. 제사를 지내기 전 준비 과정으로는 장승 앞에 황토 흙 여섯 무더기를 놓고, 금줄을 친다. 제물은 삼색실과, 시루떡, 백설기, 조기 등을 올리는데 예전에는 소머리를 놓았으나 근래에는 비용이 여의치 않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제사의 비용은 정월 초사흗날에 풍물패가 돌아다니며 걸립을 하였으나 지금은 기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음력 정월 초닷새 경에 마을회의를 열어 제관, 축관, 유사를 선정하는데, 생기복덕이 닿고 집안에 과년한 처녀나 젊은 며느리가 없는 집의 사람이어야 한다. 제관. 축관. 유사로 선정되면 제지내기 3∼4일 전부터 대문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부정한 사람이 왕래하는 것을 금하고 외부 출입을 삼간 채 매일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부정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한다. 제사 당일이 되면 유사집에서 음식을 만들며, 제의는 일반 유교식 기제사와 비슷하여 제관이 분향, 강신한 뒤 잔을 붓고 재배한다. 이어 축관이 축문을 읽는다. 독축을 한 후에 아헌, 종헌, 첨작, 소지의 순으로 진행한다. 소지는 예전에는 집집마다 대주소지를 올리고 가축소지도 올렸으나 대동소지 하나로 모두 올리며 제관, 축관, 유사, 마을 대표자, 군대간 사람 등을 위해 따로 하나씩 올려준다. 제의를 마치면 풍물패는 풍물을 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