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첨
카테고리
대덕의 인물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8
조회
58
강 첨
* 자(字) : 공신(公信)
* 호(號) : 추월헌(秋月軒)
* 년 대 : 1559년(명종14) - 1611년(인조12)
* 관 직 : 교리, 장령, 사간, 홍문관 부제학, 이조참의, 대사헌, 대사간
* 거 주 지 : 회덕 잔골(자운리, 석봉동)
* 묘 소 : 대전광역시 대덕구 석봉동
강첨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호는 추월헌(秋月軒), 본관은 진주이다. 효자로서 영의정에 추증된 강운상의 아들이다. 1576년(선조9)에 생원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고, 159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正字)가 되었다. 1592년(선조25)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도·경상도의 운량 어사가 되어 군량 조달에 힘썼다. 1595년 지평이 되고 이어 사서를 겸하였으며, 경연에 나아가『주역』을 강론하였다. 1596년(선조29) 경상도 체찰사의 종사관이 되어 일본의 재침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였다. 이어 교리·장령 등을 거쳐 1603년 사간으로 승진, 최영경·정철 등을 탄핵했다. 이듬해 부승지가 되고, 1606년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이어 홍문관 부제학·이조참의·대사헌·대사간 등을 지냈다. 성품이 강직하여 악을 미워하고 소인을 멀리하였으며, 관부나 가정에서 늘 최선을 다하였다.
만년에 낙향하여 회덕 자운골에 은거하였다. 그를 비롯한 종형제 12명은 죽부(竹部) 죽렬자(竹列字) 계열의 외자 이름을 썼는데, 12인이 여러 벼슬을 하면서도 고향을 떠나려 하지 않고, 효우로서 가문을 지키고 시가로서 자연을 만끽하면서 품위 있는 선비 생활을 즐겼기에 이들을 세칭 12죽(竹)이라 칭하였다. 묘소는 회덕 잔골(대덕구 석봉동)에 있다.
* 자(字) : 공신(公信)
* 호(號) : 추월헌(秋月軒)
* 년 대 : 1559년(명종14) - 1611년(인조12)
* 관 직 : 교리, 장령, 사간, 홍문관 부제학, 이조참의, 대사헌, 대사간
* 거 주 지 : 회덕 잔골(자운리, 석봉동)
* 묘 소 : 대전광역시 대덕구 석봉동
강첨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호는 추월헌(秋月軒), 본관은 진주이다. 효자로서 영의정에 추증된 강운상의 아들이다. 1576년(선조9)에 생원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고, 159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正字)가 되었다. 1592년(선조25)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도·경상도의 운량 어사가 되어 군량 조달에 힘썼다. 1595년 지평이 되고 이어 사서를 겸하였으며, 경연에 나아가『주역』을 강론하였다. 1596년(선조29) 경상도 체찰사의 종사관이 되어 일본의 재침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였다. 이어 교리·장령 등을 거쳐 1603년 사간으로 승진, 최영경·정철 등을 탄핵했다. 이듬해 부승지가 되고, 1606년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이어 홍문관 부제학·이조참의·대사헌·대사간 등을 지냈다. 성품이 강직하여 악을 미워하고 소인을 멀리하였으며, 관부나 가정에서 늘 최선을 다하였다.
만년에 낙향하여 회덕 자운골에 은거하였다. 그를 비롯한 종형제 12명은 죽부(竹部) 죽렬자(竹列字) 계열의 외자 이름을 썼는데, 12인이 여러 벼슬을 하면서도 고향을 떠나려 하지 않고, 효우로서 가문을 지키고 시가로서 자연을 만끽하면서 품위 있는 선비 생활을 즐겼기에 이들을 세칭 12죽(竹)이라 칭하였다. 묘소는 회덕 잔골(대덕구 석봉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