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석(金昌錫)
카테고리
대덕의 인물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8
조회
56
김창석(金昌錫)
* 자(字) : 문중(文仲)
* 호(號) : 오사재(五思齋)
* 년 대 : 1648년(인조26) - 1724년(경종4)
* 관 직 : 단양군수, 남원부사, 청주목사, 밀양부사, 돈영부도정
* 출 생 지 : 회덕 송촌(백달촌, 중리동)
* 묘 소 : 충남 연기 동현면 부동
김창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오사재(五思齋)이며, 본관은 경주이고, 송애 김경여의 손자이다. 회덕 백달촌에서 출생하여, 송준길·송시열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우고 벼슬길에 나갔으나, 1689년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더 이상 벼슬하지 않았다.
1695년 이후 다시 출사하여 단양군수·남원부사·청주목사·밀양부사 등을 역임했다. 1719년(숙종45) 기사(耆社, 정2품, 70세 이상의 문관이 들어가서 대우받던 곳)에 들어가 돈령 부도정에 임명되었다. 공직에 있을 때는 겸허하고 간결하면서도 위엄과 지혜로써 공무를 잘 처리하여 많은 치적을 쌓았다. 그리하여 임지를 떠날 때는 그 고을의 사민들이 송덕비를 세워 그의 치적을 기리었다.
1724년 송촌의 집에서 향년 77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묘소는 충남 연기군 동현 면 부동의 선영에 있다.
* 자(字) : 문중(文仲)
* 호(號) : 오사재(五思齋)
* 년 대 : 1648년(인조26) - 1724년(경종4)
* 관 직 : 단양군수, 남원부사, 청주목사, 밀양부사, 돈영부도정
* 출 생 지 : 회덕 송촌(백달촌, 중리동)
* 묘 소 : 충남 연기 동현면 부동
김창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오사재(五思齋)이며, 본관은 경주이고, 송애 김경여의 손자이다. 회덕 백달촌에서 출생하여, 송준길·송시열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우고 벼슬길에 나갔으나, 1689년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더 이상 벼슬하지 않았다.
1695년 이후 다시 출사하여 단양군수·남원부사·청주목사·밀양부사 등을 역임했다. 1719년(숙종45) 기사(耆社, 정2품, 70세 이상의 문관이 들어가서 대우받던 곳)에 들어가 돈령 부도정에 임명되었다. 공직에 있을 때는 겸허하고 간결하면서도 위엄과 지혜로써 공무를 잘 처리하여 많은 치적을 쌓았다. 그리하여 임지를 떠날 때는 그 고을의 사민들이 송덕비를 세워 그의 치적을 기리었다.
1724년 송촌의 집에서 향년 77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묘소는 충남 연기군 동현 면 부동의 선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