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평(閔枰)
카테고리
대덕의 인물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8
조회
35
민 평(閔枰)
* 호(號) : 언시(言尸)
* 년 대 : 1582년(선조15) - 1646년(인조24)
* 증 직 : 호조정랑
* 유 적 : 효자 정려(도룡동)
* 묘 소 : 대전광역시 대덕구 삼정동
민평은 조선 후기의 효자로 호는 언시(言尸), 본관은 여흥이다. 여흥민씨의 회덕 입향조 민충원의 현손이고, 민여검의 아들로 여흥민씨삼세칠효 중 한 사람이다. 향시에는 합격했으나 병이 심하여 더 이상 시험에 나가지 못했다.
민평은 11세 때인 1593년(선조26) 임진왜란으로 적병을 피하기 위해 부모를 비롯한 집안어른을 모시고 도랑이 있는 골짜기 근처에 숨어 지냈는데 어른들은 흙이 마른 곳을 택하여 모시고 자신은 흙이 젖어서 축축한 낮은 곳에서 지내다가 마침내 병을 얻어 끝내 폐질(廢疾)에 걸렸다고 한다. 불구의 몸이 되자 자신이 폐질인임을 자처하여 자호를 언시(言尸)라고 하였다.
일찍이 관례를 할 때, 송시열이 빈(賓)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맛보지 않은 음식은 먼저 입에 대지 않았고, 새로 나는 곡물을 먼저 신에게 올리는 일을 하지 않은 제물은 절대로 먹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이 효아라고 칭찬하였다. 송시열은 묘비에 '독행지사' 라고 쓰고 극진한 효행은 하늘이 준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후에 관찰사가 그의 효행사적을 조정에 보고하여 호조정랑이 증직 되었고, 1688년(숙종14)에는 정려의 은전이 내려졌다. 정려문은 유성구 도룡동에 있다. 묘소는 대전 대덕구 삼정동에 있다.
* 자(字) : 형숙(衡叔)
* 호(號) : 언시(言尸)
* 년 대 : 1582년(선조15) - 1646년(인조24)
* 증 직 : 호조정랑
* 유 적 : 효자 정려(도룡동)
* 묘 소 : 대전광역시 대덕구 삼정동
민평은 조선 후기의 효자로 호는 언시(言尸), 본관은 여흥이다. 여흥민씨의 회덕 입향조 민충원의 현손이고, 민여검의 아들로 여흥민씨삼세칠효 중 한 사람이다. 향시에는 합격했으나 병이 심하여 더 이상 시험에 나가지 못했다.
민평은 11세 때인 1593년(선조26) 임진왜란으로 적병을 피하기 위해 부모를 비롯한 집안어른을 모시고 도랑이 있는 골짜기 근처에 숨어 지냈는데 어른들은 흙이 마른 곳을 택하여 모시고 자신은 흙이 젖어서 축축한 낮은 곳에서 지내다가 마침내 병을 얻어 끝내 폐질(廢疾)에 걸렸다고 한다. 불구의 몸이 되자 자신이 폐질인임을 자처하여 자호를 언시(言尸)라고 하였다.
일찍이 관례를 할 때, 송시열이 빈(賓)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맛보지 않은 음식은 먼저 입에 대지 않았고, 새로 나는 곡물을 먼저 신에게 올리는 일을 하지 않은 제물은 절대로 먹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이 효아라고 칭찬하였다. 송시열은 묘비에 '독행지사' 라고 쓰고 극진한 효행은 하늘이 준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후에 관찰사가 그의 효행사적을 조정에 보고하여 호조정랑이 증직 되었고, 1688년(숙종14)에는 정려의 은전이 내려졌다. 정려문은 유성구 도룡동에 있다. 묘소는 대전 대덕구 삼정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