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의 역사문화

박효함(朴孝諴​)

카테고리
대덕의 인물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8
조회
163
박효함(朴孝​)

 년 대 : 1387(고려우왕13) - 1454(단종2)

관 직 청주목사첨추강릉대도호부사

증 직 이조참판

유 적 신도비(삼정동)

묘 소 대전광역시 대덕구 삼정동

 

 

박효함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충주이다성균진사로서 후에 병조참의에 증직된 박진의 아들이다조부 박광리는 민부 의랑으로서 개성 소윤(小尹)을 세 번이나 하였는데공정한 판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조부는 무수동에 살던 합천이씨 이춘계(전리정랑)의 사위가 되었고부친 박진은 이 지역의 거족인 부안임씨 임건의 사위가 되었다이러한 연혼으로 인하여 충주 박씨들이 이 지방(서구 괴정동일명 지치울)에 와서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박효함의 4형제의 이름은 각각 효제충신(孝悌忠信)’이 들어가도록 지었다이는 아버지 박진이 아들들이 모두 나쁜 데로 떨어지지 않게 하여 능히 아름다운 일을 지키게 하려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 한다.

 

 

박효함은 효제를 다하고 청렴하고 정직하며다스리는 제주가 있어서 명성이 우림(왕의 숙위소)에까지 알려졌다. 1430(세종12) 충청도 보령에 해적의 침입이 우려되어 조정에서 여러 번 이를 다스릴 사람을 찾았으나 적격자를 얻지 못하였는데박효함이 청렴결백하고 행동이 지극하다 하여 천거되었다이에 박효함은 순찰사 최윤덕감사 박안신과 더불어 성의 동쪽 1리쯤에 당산의 양지바른 곳을 찾아 성을 쌓았다두 달이 안 되어 성이 완성되니 백성들은 적은 노력으로 도적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박효함은 이듬해 청주목사가 되어 공적이 많아 청백리로 기록되었다그 후 얼마 안 되어 조정에 돌아와 첨추가 되었고다시 강릉 대도호부사로 임명되어 나갔는데 1454년 관청에서 죽으니 향년 68세였다.

 

 

임금은 부음에 애도하였고 특별히 예장케 하였으며청백리라 하여 이조참판에 증직 되었다묘소는 대덕구 삼정동(정당촌)에 있고서거정이 지은 묘비(1800정조 24)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