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의 역사문화

변 견(邊堅)

카테고리
대덕의 인물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8
조회
35
변 견(邊堅)

년 대 : 1400(정종2) - 1461(세조7)

관 직 사용(9)

거 주 지 회덕 노고산 아래(직동 피골)

묘 소 대전광역시 대덕구 삼정동

 

 

변견은 조선 초기의 인물로 원주변씨의 회덕 입향조이며 본관은 원주이다그는 1400(정종2) 정종의 부마(덕천옹주)인 변상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아버지 변상복은 후에 강릉부사를 역임하였다조부는 좌군 도총부총제를 지낸 변이이고증조는 원천부원군 변안열이다.

 

 

변견은 처음에 선음으로써 사용(9)을 제수 받았다그는 왕실의 외손으로서 앞으로 더 큰 벼슬을 기대할 수도 있었겠지만염퇴할 것을 결심하여 한양의 화려한 생활을 버리고 별업을 둔 회덕의 노고산 아래로 퇴거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이후 후손들이 이곳에 세거하였으므로그는 원주 변씨의 회덕 입향조가 되었다.

 

『원주변씨 부마공파보』에 의하면, 1675(숙종원년변견의 5대 손인 변선수 등은 입향조 변견의 산소문제로 여흥민씨가와 더불어 산송을 제기하였다여흥민씨가에서 그의 5대조 변견의 산소 근처에 민씨의 묘소를 정하고변견의 묘소를 고총이라 하여 도리어 자기들이 금양을 하므로 이를 관에 소송한다는 것이었다이때 변선주는 혈서의 탄원서를 올렸다 한다당시 양 가문간의 산송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숙종 임금의 판결로서 그 대강을 짐작할 수는 있다.

 

 
이때 숙종은 충청감사로 하여금 산송의 전말을 조사하여 보고하게 하였는데그 전교에 변선주와 민광훈이 다투는 산은 당초에 입장한 것으로는 변가가 주인이고지금의 형세는 민가가 주인 노릇을 하는데두 집이 각각 금양할 평수가 있으니이제부터 서로 금양 내에 침범하거나 다투지 말라라고 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지금까지도 이들 양 가문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숙종의 왕명을 준수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변견의 묘소는 현재 대덕구 삼정동에 있고표석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