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의 역사문화

송계간(宋啓幹)

카테고리
대덕의 인물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8
조회
44
송계간(宋啓幹)

 
() : 직경(直卿)

() : 추양(秋陽)

년 대 : 1764(영조40) - 1841(헌종7)

관 직 동부승지대사헌형조참판

거 주 지 회덕 송촌 추곡

저 서 추양유고

묘 소 충북 옥천 동이면 평산리

 

 

송계간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로 호는 추양(秋陽)이고본관은 은진이다송계간은 1764년 아버지 목사 송시연과 어머니 평산 신씨 사이에서 한양에서 출생하였다그는 어렸을 때 조부 송명흠에게서 학문을 배워 20세에 향시에 응시하면서부터 경전의 깊은 이치를 탐구하였고제자백가의 학문도 두루 섭렵하였다. 1796(정조20) 33세 되던 해 우의정 윤시동이 그의 학행이 뛰어난 것으로 천거하여 부사용에 제수되었고같은 해에 동몽교관을 제수 받았다. 36세에는 사옹원 직장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38세에는 종묘서 부봉사를 역임하였다. 45세 때에 공조정랑사헌부 지평을 제수 받은 이후 그에 대한 징소는 계속 이어져서 집의·참의·찬선·동부승지 등을 제수 받았고, 70세에는 가선대부에 올랐다. 73세에 사헌부 대사헌과 형조참판에 제수되었고성균관 좨주에 천거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78세 정월에 임금이 친히 자헌대부로 발탁하였고한성부 판윤을 제수하였으나 모두 사양하고 학문에 정진하다가 78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그가 죽자 조정에서는 예조좌랑을 보내서 치제(致祭:나라에서 공이 있는 사람에게 내리는 제사)하였고그해 3월 옥천 이남면 평산리에 장사 지냈다.

 

 
송계간은 평소 겸손하고 검소하였으며이를 자손들에게 친히 가르쳤는데그가 죽은 후 옷상자를 열어보니 옷이 없었을 정도였다 한다항상 학문을 닦는데 주력하여 손수 경전의 요어를 초서하여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였다학자로 자처하지 않았으므로 깊은 학문의 조예와 그 경향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시호는 문경(文敬)이고저서로 『추양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