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계사(宋繼祀)
카테고리
대덕의 인물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8
조회
40
송계사(宋繼祀)
* 관 주 직 : 상주판관
* 증 직 : 사헌부 지평
* 거 주 지 : 회덕 송촌(백달촌, 중리동)
* 묘 소 : 대전광역시 동구 주산동 고봉산
송계사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이며, 쌍청당 송유의 장남이다. 아버지 송유가 할머니 보다 먼저 작고하자 할머니인 유씨 부인을 잘 받들어 봉양하였다. 1455년(단종3)에 주부로서 정난원종공신 3등에 올랐고, 이어 상주 판관이 되었다. 송계사와 거의 동년배였던 김수온(1409-1481)은 그의 재능과 치적에 대해 "청렴하고 유능하여 쓰임에 이르렀고, 중외에 등용되어 그 재능이 시험되었으니, 안연히(우뚝) 공명을 세울 것을 자평한다." 라고 찬양하고 또 그의 전도를 크게 기대하였다. 홍귀달은 상주목사가 되어 떠나는 송계사에게 "상주통판으로 백성에게 끼친 사랑이 있었으니 군(君)의 혜택을 입은 상주 사람들이 지금 기뻐서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용재 성현은 그의 묘지명에서 송계사가 상주에서 치적이 있음을 쓰고 있고, 후일 송시열은 이러한 글들을 근거로 하여 "부군을 높이는 성적이 계징할 것이 있으니 가히 믿을 수 있다."라고 적고 단지 그 나머지의 일들이 상세하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 년 대 : 1407년(태종7) - ?
* 관 주 직 : 상주판관
* 증 직 : 사헌부 지평
* 거 주 지 : 회덕 송촌(백달촌, 중리동)
* 묘 소 : 대전광역시 동구 주산동 고봉산
송계사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이며, 쌍청당 송유의 장남이다. 아버지 송유가 할머니 보다 먼저 작고하자 할머니인 유씨 부인을 잘 받들어 봉양하였다. 1455년(단종3)에 주부로서 정난원종공신 3등에 올랐고, 이어 상주 판관이 되었다. 송계사와 거의 동년배였던 김수온(1409-1481)은 그의 재능과 치적에 대해 "청렴하고 유능하여 쓰임에 이르렀고, 중외에 등용되어 그 재능이 시험되었으니, 안연히(우뚝) 공명을 세울 것을 자평한다." 라고 찬양하고 또 그의 전도를 크게 기대하였다. 홍귀달은 상주목사가 되어 떠나는 송계사에게 "상주통판으로 백성에게 끼친 사랑이 있었으니 군(君)의 혜택을 입은 상주 사람들이 지금 기뻐서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용재 성현은 그의 묘지명에서 송계사가 상주에서 치적이 있음을 쓰고 있고, 후일 송시열은 이러한 글들을 근거로 하여 "부군을 높이는 성적이 계징할 것이 있으니 가히 믿을 수 있다."라고 적고 단지 그 나머지의 일들이 상세하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송계사는 죽은 후에 원종공신에 참여한 것으로 하여 사헌부 지평에 증직 되었다. 묘소는 회덕현의 동쪽 주산(주산동)에 있다. 묘표는 많이 훼손되어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어서 후에 7대손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6대손 송준길이 썼으며, 8대손 송기태가 전서하여 다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