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수(宋龜壽)
카테고리
대덕의 인물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8
조회
61
송구수(宋龜壽)
* 호(號) : 서부(西阜)
* 년 대 : 1497년(연산군3) - 1538년(중종33)
* 관 직 : 종묘사 부봉사
* 활 동 지 : 회덕 송촌
* 묘 소 : 충북 청원군 남이면 사현리
송구수는 조선 전기의 효자로 호는 서부(西阜), 본관은 은진이다. 삼봉 송세량의 장남으로 1497년(연산군3)에 출생하였다. 일찍이 음직으로 영경전 참봉에 임명되었다가 종묘서 부봉사에 전임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질이 특이하였고, 효심과 우애가 두터웠다. 그가 모친상을 당해 여막에 있을 때, 흰 제비가 날아와서 둥지를 틀고 사니 사람들이 그의 지극한 효성에 하늘이 감응한 징조라고 칭송하였다.
송구수는 아우 송인수와 매서인 동주 성제원과 함께 동거하면서 강학하였는데 사람들이 그 거처를 삼현려(충북 청원군 남일면 화당리 소재)라고 불렀다. 그는 특히 아우인 송인수와 우애가 돈독하였다. 동생 인수가 권간의 뜻에 거슬려 귀양 갔을 때 제수(동생의 처)가 홀로 한성에 남아 있다가 전염병에 걸리었는데, 이때 좋은 약을 구하여 간호에 힘써 쾌유케 했다. 또한 송인수가 유배지에서 이질에 걸리자 직접 그곳에 달려가서 병을 돌보아 주기도 하였다.
* 자(字) : 기수(耆叟)
* 호(號) : 서부(西阜)
* 년 대 : 1497년(연산군3) - 1538년(중종33)
* 관 직 : 종묘사 부봉사
* 활 동 지 : 회덕 송촌
* 묘 소 : 충북 청원군 남이면 사현리
송구수는 조선 전기의 효자로 호는 서부(西阜), 본관은 은진이다. 삼봉 송세량의 장남으로 1497년(연산군3)에 출생하였다. 일찍이 음직으로 영경전 참봉에 임명되었다가 종묘서 부봉사에 전임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질이 특이하였고, 효심과 우애가 두터웠다. 그가 모친상을 당해 여막에 있을 때, 흰 제비가 날아와서 둥지를 틀고 사니 사람들이 그의 지극한 효성에 하늘이 감응한 징조라고 칭송하였다.
송구수는 아우 송인수와 매서인 동주 성제원과 함께 동거하면서 강학하였는데 사람들이 그 거처를 삼현려(충북 청원군 남일면 화당리 소재)라고 불렀다. 그는 특히 아우인 송인수와 우애가 돈독하였다. 동생 인수가 권간의 뜻에 거슬려 귀양 갔을 때 제수(동생의 처)가 홀로 한성에 남아 있다가 전염병에 걸리었는데, 이때 좋은 약을 구하여 간호에 힘써 쾌유케 했다. 또한 송인수가 유배지에서 이질에 걸리자 직접 그곳에 달려가서 병을 돌보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1537년(중종32) 동생 송인수가 사면되어 돌아왔으나, 그는 42세로 일생을 마치었다. 성제원은 그의 묘에 '효자 모의 묘'라고 썼다. 이조판서에 증직 되었고, 묘소는 충북 청원군 남이면 사현리에 있다. 송구수는 효심·우애의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회덕 사회의 자치와 질서정립을 위하여 <회덕향안>을 창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송구수는 회덕향안 중 초기본인 <임자본향안>에서 송씨 중, 최상한 연대의 인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