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달수(宋達洙)
카테고리
대덕의 인물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8
조회
38
송달수(宋達洙)
* 자(字) : 언도(彦道)
* 호(號) : 수종재(守宗齋)
* 년 대 : 1808년(순조8) - 1858년(철종9)
* 관 직 : 의금부 도사, 경상도 도사, 경연관 지평, 장령, 부호군, 이조참의
* 거 주 지 : 회덕 송촌
* 저 서 : 수종재집
송달수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수종재(守宗齋), 본관은 은진이다. 증 이조참판 송흠학의 아들이다. 입재 송근수의 형이고, 강재 송치규의 문인이다. 1840년(현종6) 관찰사가 선현을 본받은 인물이라고 천거하였고, 이듬해 외간상을 당하여 3년 상을 치른 후, 1843년 교관을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1845년 의금부도사를 제수 받았고, 2년 후 왕의 특지로서 사헌부감찰에 올랐으며, 주부를 거처 경상도 도사가 되었다. 1849년 현종이 죽고 철종이 등극하였다. 이때 왕실의 상제에 대해 논란이 있었는데, 국자감 좨주 홍직필이 숙질의 차례를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데 대해, 송달수는 송근수와 함께 글을 올려, 조(祖)를 손(孫)이 잇고 숙(叔)을 질(姪)이 잇는다는 것은 불가하고, 황종손·황질이라 일컫는 것은 사계 김장생의 예학과 정주학에 요지가 있음을 근거로 하여 김장생의 설을 쫓아 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1852년(철종3)에는 경연관, 지평, 장령을 역임하였으며, 이어서 부호군을 거쳐 1855년 승지가 되었고,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학문에 힘써 예학과 성리학에 밝았다. 성리학에 있어서는 주로 이이의 설을 따랐으며, 인물동이론에서는 인물동성을 주장하는 낙론을 지지하였다. 문집으로는 『수종재집』이 전한다.
* 자(字) : 언도(彦道)
* 호(號) : 수종재(守宗齋)
* 년 대 : 1808년(순조8) - 1858년(철종9)
* 관 직 : 의금부 도사, 경상도 도사, 경연관 지평, 장령, 부호군, 이조참의
* 거 주 지 : 회덕 송촌
* 저 서 : 수종재집
송달수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수종재(守宗齋), 본관은 은진이다. 증 이조참판 송흠학의 아들이다. 입재 송근수의 형이고, 강재 송치규의 문인이다. 1840년(현종6) 관찰사가 선현을 본받은 인물이라고 천거하였고, 이듬해 외간상을 당하여 3년 상을 치른 후, 1843년 교관을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1845년 의금부도사를 제수 받았고, 2년 후 왕의 특지로서 사헌부감찰에 올랐으며, 주부를 거처 경상도 도사가 되었다. 1849년 현종이 죽고 철종이 등극하였다. 이때 왕실의 상제에 대해 논란이 있었는데, 국자감 좨주 홍직필이 숙질의 차례를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데 대해, 송달수는 송근수와 함께 글을 올려, 조(祖)를 손(孫)이 잇고 숙(叔)을 질(姪)이 잇는다는 것은 불가하고, 황종손·황질이라 일컫는 것은 사계 김장생의 예학과 정주학에 요지가 있음을 근거로 하여 김장생의 설을 쫓아 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1852년(철종3)에는 경연관, 지평, 장령을 역임하였으며, 이어서 부호군을 거쳐 1855년 승지가 되었고,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학문에 힘써 예학과 성리학에 밝았다. 성리학에 있어서는 주로 이이의 설을 따랐으며, 인물동이론에서는 인물동성을 주장하는 낙론을 지지하였다. 문집으로는 『수종재집』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