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흠(宋思欽)
카테고리
대덕의 인물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8
조회
55
송사흠(宋思欽)
* 자(字) : 유안(幼安)
* 호(號) : 의속헌(醫俗軒)
* 년 대 : 1700년(숙종26) - 1746년(영조22)
* 관 직 : 정릉참봉, 빙고별제, 공조좌랑, 봉화현감
* 출 생 지 : 회덕 송촌
* 묘 소 : 대전광역시 대덕구 읍내동
송사흠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호는 의속헌(醫俗軒), 본관은 은진. 현감 송요신의 아들로 송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리하여 독서를 좋아했고, 문장에 뛰어났다. 1727년(영조3) 27세에 생원시에 장원하여, 1741년 정릉참봉을 하였고, 2년 뒤에는 빙고별제를 하다가 그 이듬해 별제 주부를 거쳐 문학으로 발탁되어, 동궁익찬을 제수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공조좌랑·봉화현감에 올랐다. 이 해에 흉년이 들어 기근이 크게 심하였는데, 송사흠이 잘 진휼하였다. 묘소는 대덕구 읍내동에 있다.
* 자(字) : 유안(幼安)
* 호(號) : 의속헌(醫俗軒)
* 년 대 : 1700년(숙종26) - 1746년(영조22)
* 관 직 : 정릉참봉, 빙고별제, 공조좌랑, 봉화현감
* 출 생 지 : 회덕 송촌
* 묘 소 : 대전광역시 대덕구 읍내동
송사흠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호는 의속헌(醫俗軒), 본관은 은진. 현감 송요신의 아들로 송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리하여 독서를 좋아했고, 문장에 뛰어났다. 1727년(영조3) 27세에 생원시에 장원하여, 1741년 정릉참봉을 하였고, 2년 뒤에는 빙고별제를 하다가 그 이듬해 별제 주부를 거쳐 문학으로 발탁되어, 동궁익찬을 제수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공조좌랑·봉화현감에 올랐다. 이 해에 흉년이 들어 기근이 크게 심하였는데, 송사흠이 잘 진휼하였다. 묘소는 대덕구 읍내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