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렴(宋鐘濂)
카테고리
대덕의 인물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8
조회
53
송종렴(宋鐘濂)
* 자(字) : 경숙(景叔)
* 호(號) : 초암(草庵)
* 년 대 : 1840년(헌종6) - 1889년(고종26)
* 관 직 : 공릉참봉, 좌세마, 우시직
* 출 생 지 : 회덕 송촌
* 묘 소 : 대전광역시 대덕구 삼정동
송종렴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초암(草庵)이고, 본관은 은진이다. 돈녕 부사 송영노의 아들로 회덕 송촌에서 출생하였다. 용모가 출중하였고 8세에 백씨(伯氏)인 한창(漢蒼) 송종오에게서 학업을 닦았는데, 얼마 안 되어 문리를 얻어 사람들이 큰 인재라고 칭찬하였다. 그 후 경학에 탐구하여 학식이 높아 1880년(고종17)에 조정에 천거되어 공릉참봉에 제수된 후, 여러 벼슬을 거처 좌세마, 우시직에 이르렀다. 이후 계속하여 서연에 부름을 밭아 입시하여 소학·중용·대학·논어 등을 강론하였는데 매번 의리를 밝게 잘 풀이하였다.
1889년(고종 26) 3월에 드디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니 그의 나이 50세였다. 고향에서 늘 책상을 떠나지 않고 경학에 골몰하다 하루는 이르기를, “내가 10년만 더 공부하여 성덕을 가영(歌詠)했더라면 거의 불도의 은혜를 갚을 텐데...” 하며 눈물을 흘리더니 운명하였다. 묘소는 대덕구 삼정동에 있다.
* 자(字) : 경숙(景叔)
* 호(號) : 초암(草庵)
* 년 대 : 1840년(헌종6) - 1889년(고종26)
* 관 직 : 공릉참봉, 좌세마, 우시직
* 출 생 지 : 회덕 송촌
* 묘 소 : 대전광역시 대덕구 삼정동
송종렴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초암(草庵)이고, 본관은 은진이다. 돈녕 부사 송영노의 아들로 회덕 송촌에서 출생하였다. 용모가 출중하였고 8세에 백씨(伯氏)인 한창(漢蒼) 송종오에게서 학업을 닦았는데, 얼마 안 되어 문리를 얻어 사람들이 큰 인재라고 칭찬하였다. 그 후 경학에 탐구하여 학식이 높아 1880년(고종17)에 조정에 천거되어 공릉참봉에 제수된 후, 여러 벼슬을 거처 좌세마, 우시직에 이르렀다. 이후 계속하여 서연에 부름을 밭아 입시하여 소학·중용·대학·논어 등을 강론하였는데 매번 의리를 밝게 잘 풀이하였다.
1889년(고종 26) 3월에 드디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니 그의 나이 50세였다. 고향에서 늘 책상을 떠나지 않고 경학에 골몰하다 하루는 이르기를, “내가 10년만 더 공부하여 성덕을 가영(歌詠)했더라면 거의 불도의 은혜를 갚을 텐데...” 하며 눈물을 흘리더니 운명하였다. 묘소는 대덕구 삼정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