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의 역사문화

홍석무(洪錫武)

카테고리
대덕의 인물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8
조회
35
홍석무(洪錫武)

 

() : 명여(命汝)

() : 만계(晩溪)

년 대 : 1601(선조34) - 1667(현종8)

관 직 고령강음현감사복시 주부군자감 주부진잠덕천현령공주목사풍덕부사

증 직 호조참판

출 생 지 회덕(대덕구 신탄진 지역)

유 적 충효 정려

 

홍석무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호는 만계(晩溪), 본관은 남양이다회덕 신탄진의 외가에서 태어났다조부 홍순각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부친 홍이정은 참봉을 지냈다홍석무는 어려서부터 담력이 출중하였고특히 효성이 지극했다. 17세 때에는 모친상을 당하여 묘 곁에 묘막을 짓고 형과 함께 시묘했는데벽도 바르지 않고 상복도 벗지 않고죽으로 3년을 연명하여 슬픔을 다하였다또한 복을 벗은 후에는 3세 때의 부친상에 거상을 하지 못한 것이 죄가 되어 선친을 위해 3년 상을 추상하고자 하였으나 조부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그 대신 평생을 죄인으로 자처하여 일생 동안 사치하지 않고집에 있을 때는 항상 짚으로 자리를 깔았고관직에 있을 때에도 두텁게 자리를 깔지 않았다.

 

 

26세에 사용에 천거된 이후 30세에 청하현감이 되었고, 34세에 토산 현감으로 전보되었다. 1636(인조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도원수 김자점이 국사는 아랑곳없이 대군을 몰고 토산으로 사냥을 하러 나오자 홍석무는 김자점에게 적을 막을 계책을 말했으나 김자점은 이를 묵살하였다그날 밤 호군이 갑자기 물밀 듯이 밀려와서 많은 사람이 죽고 재물을 약탈당하였는데이때 토산 우봉 강음 서홍 등의 수령들이 합심하여 성은 겨우 지킬 수가 있었다.

 

 

39세에 홍석무는 고령 현감이 되었는데이때 영남지방에는 금동의 5형제가 토적이 되어 치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이에 홍석무는 경내의 군인들을 지휘하여 이들 중 3형제를 잡아 죽이고 잔당들은 말로 타일러서 훈방하였다이후 사포서 별제·사복주부·군자감 주부 등을 제수 받았고, 50세가 되던 해인 1650(효종원년)에는 선치(善治)하였다 하여 어병을 하사받았다또 이듬해 강음 현감이 되었을 때 어사가 선치하였다고 장계를 올려 표리일습을 하사받았고수령을 지낸 4개 고을에서 모두 선정비가 섰다이후 진잠덕천현령을 거쳐 공주목사와 풍덕부사를 지내고, 67세에 병으로 사망하였다숙종 43년에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 되었고순조 6년에 충효 정려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