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윤주, 차윤도 효자 정려각
카테고리
정려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
2025-04-07
조회
146
차윤주, 차윤도 효자 정려각·비(車輪周. 車輪道 孝子 旌閭閣·碑)
* 분 류 : 정 려
* 구 분 : 향토유적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240 (금강변)
* 수 량 : 건물1동, 비석2기
* 구 조 : 정면1칸, 측면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 재 료 : 목조(단청)
* 연 대 : 1891년(고종28)
* 개 요 : 조선 정조 때 회덕 미호리에서 태어난 차윤주·차윤도 형제는 소년 시절부터 효행이 남달라 효동(孝洞)이라고 소문이 널리 알려졌다. 동생 차윤도는 17세 때에 모친이 병으로 눕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인육개탕을 정성껏 달여드려 완쾌시켰으며. 형 차윤주는 20리 길의 어버이의 묘소를 3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묘 호곡하니 그 효행이 널리 알려지자 고종 17년 조정에서는 우부승지를 보내 이 사실을 확인하고 감탄하여 후일에 교지(敎旨)를 내리고 재목과 목수를 보내어 효자 정문(孝子旌門)을 건립하도록 하였다. 1891년 (고종28)에 세워진 이 효자 정려는 대덕구 미호동 취백정(翠白亭) 맞은 편의 금강 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후 정려 편액은 소실되고 다만 정려의 내용을 담은 두 개의 비를 세워 비각 내부에 보존하고 있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평면을 구획한 후 기단 위에 낮은 원형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공포는 간결한 납도리집 계통으로 꾸몄고 창방 위에는 3개의 소로를 놓아 주심도리를 받고 있으며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사면에는 비를 보호하기 위해 홍살을 둘렀다
* 분 류 : 정 려
* 구 분 : 향토유적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240 (금강변)
* 수 량 : 건물1동, 비석2기
* 구 조 : 정면1칸, 측면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 재 료 : 목조(단청)
* 연 대 : 1891년(고종28)
* 개 요 : 조선 정조 때 회덕 미호리에서 태어난 차윤주·차윤도 형제는 소년 시절부터 효행이 남달라 효동(孝洞)이라고 소문이 널리 알려졌다. 동생 차윤도는 17세 때에 모친이 병으로 눕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인육개탕을 정성껏 달여드려 완쾌시켰으며. 형 차윤주는 20리 길의 어버이의 묘소를 3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묘 호곡하니 그 효행이 널리 알려지자 고종 17년 조정에서는 우부승지를 보내 이 사실을 확인하고 감탄하여 후일에 교지(敎旨)를 내리고 재목과 목수를 보내어 효자 정문(孝子旌門)을 건립하도록 하였다. 1891년 (고종28)에 세워진 이 효자 정려는 대덕구 미호동 취백정(翠白亭) 맞은 편의 금강 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후 정려 편액은 소실되고 다만 정려의 내용을 담은 두 개의 비를 세워 비각 내부에 보존하고 있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평면을 구획한 후 기단 위에 낮은 원형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공포는 간결한 납도리집 계통으로 꾸몄고 창방 위에는 3개의 소로를 놓아 주심도리를 받고 있으며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사면에는 비를 보호하기 위해 홍살을 둘렀다